심슨에 눌린 클린턴 연두교서 "찬밥"

흥미진진한 살인사건 재판에 눌려 찬밥 신세가 된 대통령의 연두교서. 5일(한국시간) 백악관 관계자들은 "O.J.심슨 민사재판 판결"에 정신이 팔린 국민들과 매스콤의 눈길을 대통령쪽으로 돌리느라 진땀을 뺐다. 연두교서가 발표된 것은 오전11시(현지시간). 전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O.J.심슨 민사재판 판결을 1시간여 앞둔 시간이었다. 미식축구선수출신의 흑인 슈퍼스타 심슨이 과연 바람난 백인아내와 정부를살인했느냐 여부가 판가름 나는 시간대에 대통령 연두교서가 발표되는 것이었다. 이날 배심원들은 심슨의 책임을 인정, 피해자 가족들에게 총 8백50만달러(약 74억원)의 보상금을 지급하도록 평결했다. 연두교서 발표 1시간전께 이 사실을 안 백악관은 혼비백산했다. 백악관은 이미 "미스USA" 선발대회(6일 오전11시)를 피해 연두교서를 하루앞당긴 터였다. 이날 미국의 주요 방송들은 연두교서를 끝까지 방영하는 "최소한"의 예의는 지켰다. 그러나 연두교서에 대한 박수소리가 채 끝나기도 전에 방송사들은 매정하게도 화면을 심슨재판장으로 돌려버렸다. 드라마틱한 살인사건이나 미인선발대회보다도 관심을 끌지 못한 대통령의 연두교서. 미국인들의 심각한 정치불감증이 여실히 드러난 하루였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