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책] 피터 현 저서 '세계를 구름처름 떠도는...'

*** ''세계를 구름처럼 떠도는 사나이'' 김종규 "넘쳐난다"는 표현이 엇비슷이 나마 맞아 들어갈까. 사람이야기가 많이 눈에 띄는 세상이다. 혹자는 이제 사는 게 웬만큼 여유있으니 타인의 삶에 눈을 돌리는 것이라고 평하곤 한다. 글쎄 사르트르의 "열쇠구멍 훔쳐보기(?)" 오히려 삶의 정열이 고갈되어 갈 때, 세태에 찌들어 권태와 고독에 전염되어 갈 때, 하나의 자극제가 되어주는 것이 타인의 인생 역정은 아닐까. 나에게 그런 글읽기는 이처럼 재충전의 시간이 된다. 그리고 그 삶의 그림이 단순한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거나 얄팍한 패션에 부응하는 가벼움으로 채색된 것이 아니라 자기존재를 향한 끈끈한 애정과 배려로 가득 수놓아져 있을 때, 나는 험산준봉을 만나게 된다. 그때 카타르시스와 감동이 있고 가슴 한 켠이 뜨악해지고 눈시울이 적셔져온다. 피터 현 그는 험산준봉이고, 그의 회고록 "세계를 구름처럼 떠도는 사나이"는 험산준봉의 지질학사요 생태학사였다. 북한 땅 한적한 촌락에서 모든 이들이 꿈꾸는 문화의 도시 파리로 날아온 방랑자. 전세계 인텔리들이 모여드는 저 유명한 카페 되 마고의 테라스에 앉아 세계의 유수지를 뒤적이며 커피를 주문하는 식자.바이블과 탈무드, 코란과 불경을 한데 어우르는 사변가. 윌리엄 포크너, 마르그리트 뒤라스에서 마드리드 뒷골목 여인네에게까지 자신의 기를 흠뻑 불어넣을 수 있는 모험가. 동이라는 날실과 서라는 씨실을 요리해 진정한 코스모폴리타니즘을 꽃피운 세계주의자. 맛좋은 음식을 먹고 싶어도 못 먹을 때가 있지만, 깨끗한 일품 섹스는 얼마든지 좋다는 로맨티스트. 무엇보다 피터 현의 삶은 공허한 이론에 둘러싸여 있지 않다. 실제 체험에서 우러난 경험이라는 반석-예수가 그 위에 교회를 세우리라던 베드로의 영어식 표현이 피터가 아니던가-위에 단단히 자리잡고 있는 그것이 강력한 활시위를 튕겨져 나와 가슴으로 가슴으로 날아든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