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소평 사망후 '중국'] 6대이슈 진단 : <6> 홍콩의 장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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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소평이 사망하기 이전부터 북경에선 유행가 가수 라대우가 부른 홍콩찬미가 "동방의 구슬"이 큰 인기를 얻고 있다. 등의 사망을 접한 외국기업들은 그의 가사대로 홍콩이 "영원한 동방의 구슬이 될것인가"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홍콩과 중국의 관계는 대만과 대륙의 관계보다 몇배 더 밀접하다. 서방외교관들은 이런 관계를 두고 "중국에서 바람만 불어도 홍콩은 기침하고 콧물을 흘리며 열이 오른다"고 말한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보면 생전의 등이 개혁개방정책을 실시할때부터 홍콩과중국은 일체화가 진행되기 시작했다. 홍콩은 이때부터 중국에 대한 위탁가공을 개시하고 직접투자를 가파르게 늘려 왔다. 중국이 홍콩에서 받아들인 직접투자액은 96년말 누계(계약기준)로 2천억달러로 외국기업의 전체 대중투자액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홍콩이 중국에 적극 투자하는 것만큼이나 중국도 홍콩진출에 열을 올리고 있다. 80년대 후반이후 중국의 각 성 시의 주재기관들이 속속 홍콩에 사무소를 차리고 일부 지방향도 홍콩에 주재사무실을 두고 있다. 중국기업의 대홍콩진출도 많다. 화윤집단 초상국등 주요 그룹과 국제투자신탁공사(CITIC)등 2천여개 기업이홍콩에서 크고 작은 사업을 벌이고 있다. 중국은 또 주식시장을 통해 홍콩자본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93년7월 홍콩주식시장에 뛰어든 중국은 현재까지 20여개사를 상장시켰고 증시상장외에 기업을 인수하는 방식으로 증권시장에 참여한 기업이 30여개사에 달한다. 이처럼 홍콩과 중국은 경제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고 등이 사망한 이 시간 이후에도 이런 관계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중국이 언제부터 홍콩을 사회주의방식으로 통치할 것인가. 이 질문은 홍콩의 중국반환과는 별개이다. 명확히 말해 홍콩에 진출한 외국기업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 "중국이 언제까지 자치를 인정할 것인가"이다. 이에대한 답은 "중국이 섣불리 홍콩을 사회주의 방식으로 통치하려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생전의 등소평은 영국과의 홍콩반환협상때 "홍콩의 현 제도를 50년간 변하지 않고 유지하겠다"고 약속했다. 비록 이 약속을 한 등이 세상을 떴어도 중국은 등의 약속을 지킬 것으로 보인다. 96년12월 홍콩초대행정장관에 선출된 동건화씨(60)도 이 점에 대해선 분명한 입장이다. 일부 강경론자들이 빠른 시일내에 홍콩을 사회주의방식으로 통치하자고 해도 실리추구론자의 주장을 꺾지는 못할 것이라는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홍콩의 자치"가 보장되는 기간이 1백년이나 20년이 아니고 하필 50년인가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중국은 이에대한 해석을 달지 않고 있다. 좌우정황으로 봐 50년의 의미를 해석할 뿐이다. 홍콩과 대륙간의 경제관계가 홍콩의 현제도를 50년동안 유지하게 하는 근본적인 요인이다. 2047년쯤에는 중국의 경제가 상당한 수준에 도달하고 세계에서 주요한 지위를 차지하게 될것이다. 경제대국 소리를 듣는 것도 시간문제다. 그때가 되면 상대적으로 홍콩의 제도가 어떻게 되는가 하는 것은 중국대륙의 경제발전에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게 된다. 이에 필요한 시간이 50년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전제는 있다. 중국대륙이 격렬한 변화를 거치더라도 권력을 잡은 세력들이 대홍콩 약속을지킬때 가능한 일이다. 그렇지 못할때는 홍콩은 하나의 "정치안건"에 불과하게 된다. 만일 중국의 전반적인 정치형태가 "좌"로 돌아간다면 홍콩의 운명이 좋을리가 없다. 역으로 중국의 정치형태가 개혁의 방향을 유지하게 되면 홍콩정책은 "우"의길을 가게 될것이다. 대륙의 정치 상황이 홍콩에 직결된다는 얘기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