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파일] (나의 직업/나의 보람) 한진수 <삼섬생명과학연>
입력
수정
한진수 수의사하면 으레 소와 말 내지는 돼지등을 고치는 대동물수의사나 강아지 고양이등을 고치는 소동물수의사를 떠올리게 마련이다. 그러나 실험동물수의사라는 말은 조금 생소할 것이다. 실험동물 수의사인 본인은 동물실험이 완벽하게 이뤄지도록 하기 위해 시설의 유지관리를 비롯 실험기술과 관련된 정보제공및 기술지원은 물론 실험내용에 따라 다양하게 요구되는 동물의 입수및 관리방안 수립등의 역할을 하고 있다. 실험동물은 엄격히 실험용동물과는 구별된다. 실험에 쓰인다고해서 전부 실험동물은 아니다. 왜냐하면 실험을 목적으로 철저한 컨트롤(유전학적및 생물학적)이 되어있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엄청난 품질의 차이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본인이 일하는 시설에서 모든 공기는 고성능 필터로 여과하여 병원성 미생물을 차단하고 동물 특유의 냄새를 활성탄 필터로 제거하여 대기중에 배출된다. 뿐만 아니라 고성능의 습식건조기를 사용하므로 먼지 미생물제거는 물론 천연음이온이 대량으로 방출되어 실험동물들은 사람이 누리지 못하는 무공해의 환경을 만끽하고있는 셈이다. 따라서 혹자는 이곳을 Animal Hilton Hotel이라고 부러워도 한다. 본인에게는 이곳이 God of animal kingdom인 셈이다. 간혹 실험하러 오는 의사나 박사들이 동물병원을 차리면 웬만한 의사보다 돈을 많이 버는데 왜 하필이면 쥐나 만지는 일을 하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대답은 간단하다. "하고싶어서"이다. 직업의 만족도만큼 중요한 요건은 없다. 그 다음은 보람이다. 본인은 임상보다는 연구직에 갈망이 있었다. 그리고 이왕이면 인류의 건강과 복지를 위해 크게 봉사하는 일을 하고싶었다. 그래서 일본동경대학에서 사람의 질환연구를 위해 대신 희생당할 모델동물개발의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러나 개인차원의 연구성과는 한계가 있을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 지금의 일에 나선 것이다. 동물실험 수의분야는 아직까지도 국내에서는 원시적인 단계이지만 최근에서야 생물의학연구에 국제경쟁력이 요구되면서부터 실험동물의학 전문가의 필요성이 급격히 부각되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에서는 최소한 8년이라는 수의사과정을 거친후 ACLAM이라는 실험동물의학 전문대학원을 거쳐 일종의 전문의 제도인 Diplomate가 된다. 이 실험동물수의사들은 각 연구기관별로 동물실험이 적법하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감독 및 운영하는 일을 하는 전문가들로 약 7백여명이 활동하고 있다. 본인은 이 분야의 국내선구자라는 자부심을 갖고 일하고 있지만 아직 어려운 부분이 많이 있다. 인식이 덜 되어 있는데다 국내경험자도 드물어 조언을 얻기 어려운 실정이다. 본 시설에서의 연구가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충분히 경쟁력을 갖는 연구가 되도록 무대위 주인공의 화려한 조명을 위해 오늘도 나는 뒤에서 무대세트를 감독하고있다. 언젠가는 우리 연구소의 누군가가 내대신 노벨상을 받아주길 고대하며.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