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시내버스 시영화 전환 검토를 .. 박수규 <이사>

박수규 우리 민족은 본래 독창적이고 진취적인 민족이었건만, 웬일인지 근래에 들어와 선진국에서 하는 것이라면 무엇이건 분석 비판없이 조급하게 획일적으로 적용하는 종속적 신드롬에 빠져 있는 듯하다. 시내버스 운송사업만 해도 그렇다. 현실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이 사업이야말로 지방자치 본격화시대에 꼭 맞는 "공기업화"해야 할 공적 사업이다. 그런데도 "민영화"라는 시대적 유행의 물결에 떠밀려 아무도 선뜻 논의를 못하고 있다. 돌이켜 보건대 1974년 시영버스가 민영화될 때는 지하철과 같은 기간 대중교통수단이 없었다. 그래서 도시확장에 맞춰 서둘러 민간자본에 의해 시내버스를 확충하는 일이 당면 과제였다. 그러나 민영화전환후 23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그간의 변화된 도시환경과 민영화 운영의 공과, 그리고 현재의 시내버스 운영실태를 따져본 연후에 아무런 선입관 없이 제로베이스에서 제도개선 아이디어를 짜내야겠다. 먼저 고려할 것은 오늘날 시내버스사업의 공익적 성격이 지하철과 하등 다를 것이 없다는 점이다. 그뿐만 아니라 지하철과 긴밀하게 연계 운영되어야 할 2대 기간 대중교통수단이다. 더욱이 앞으로 지하철-버스 환승역의 확대설치, 버스의 종류와 요금단일화,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지하철-버스간의 운송체계 및 일관 요금체계 등을 통한 지하철-버스간 "주.종 일체화"시스템의 완성을 지향해야 할 것이다. 둘째로 민영화의 근본취지는 자유경쟁을 통한 저렴한 요금과 쾌적한 서비스의 실현에 있다. 그러나 민영화 23년동안 버스요금은 매년 다른 공공요금이나 일반물가를 크게 앞지르는 인상행진을 시현했지만, 시설과 서비스 개선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감독기관 공무원과의 유착을 통한 각종 이권 챙기기, 사업주의 수익금횡령 등 비리만 속출하고 있고 종업원에 대한 복지나 시민을 위한 편익은 늘 뒷전이었으며 업계 자체도 규모의 영세성과 운영의 전근대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 노선에 2개이상 업체의 버스가 운행될 때 경쟁이 생기게 마련이지 노선을 고정적 독점적 또는 정기적으로 순환 변경하는 현행 운영체제하에서그러한 자유경쟁을 통한 저렴요금, 쾌적서비스를 기대한다는 것은 순진하다 못해 미련한 것에 가깝다. 셋째로 시내버스의 차고지, 주.정차장, 환승역 등은 종합적인 도시계획의 일환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영세한 민간 운송업체들이 과연 이러한 도시계획의 발전에 적절하게 대응할 태세(의지와 능력)를 갖출 수 있겠는지 의심스럽다. 현재의 실정으로는 오히려 도시계획과 그에 따른 차고지 정비소설치를 위한 용지획득의 곤란으로 인해 주택가 이면도로나 공공용지의 불법점용이 늘고 있는 상태이다. 지금 서울시를 비롯한 전국 각 광역시와 도에서 시내버스의 적정운임을 공정하게 산정하거나 운영개선을 강구하려고 새로운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현상이지만 현재의 민영체제를 그냥 두고서는 결코 위와 같은 폐습 폐단이 근절되지 않을 것이다. 감독기관과 운송사업자간의 끝없는 꼬리물기와 술래잡기만 계속될 따름일 것이다. 더구나 아직 대다수 지자체에서는 운송사업자조합에서 돈을 내어 운임산정 용역을 발주하고 있는데, 이런 여건에서 해당 수임 연구기관이 과연 어떻게 공정 정확하게 조사연구를 수행해 주기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최근 지방자치단체들은 고유의무인 통치행정 외에 시설 자산관리, 나아가 산업 관광 무역 등 각종 경영수익사업까지 다투어 공기업 내지는 민-관영 방식으로 추진하고 있는 터에 가장 공익성이 강하고 연계화 종합계획화 현대화의 필요성이 절실한 시내버스 운송사업을 영세 민간사업자들에게 그냥 맡겨둔다는 것은 지역주민 기반생활의 질적수준 자체를 열악한 상태로 방치하려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시내버스 운송사업은 이제 지역주민 전체를 위한 복지행정 그 자체여야 할 대상이다. 물론 23년전의 그 전근대적 시영버스체제로 환원하자는 것이 아니라 저럼요율, 쾌적한 서비스, 효율운영을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 "현대적 공기업"개념으로의 전환을 진지하게 검토해 보자는 것이다. 사실 지금은 버스 내외부에 부착하는 광고수입도 적지 않고 잘만 운영하면 일반회계로부터의 전용이 없어도 채산성확보가 가능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서울시가 민간운송업체들의 버스운행이 곤란하거나 채산성이 극히 낮은 일부구간(남산터널-강남간 등)에 시범적으로 시영버스를 운영하겠다고 공표한 것은 진일보한 조치로 생각된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했듯이 시내버스는 이제 시민의 삶의 질 자체와 직결될뿐 아니라 지하철체계와의 일체 시스템으로 운영되어야 할 SOC사업에 속한다. 따라서 단순히 현행 민간업체에 의한 운송체계를 부분 보완하는 것으로는 결코 근본해결책이 되지 못할 것이며 자칫 목적-수단간의 가치전도를 가져 올 수도 있다. 아무쪼록 전면 시영화를 전제로 좀더 종합적이고 깊이있는 조사연구를 통해 시내버스 "시영화 전환"의 마스터플랜이 세워졌으면 한다. 시 엠블럼이 새겨진 산뜻한 새 시대 시영버스의 질주 모습을 그려보면서 관계 정부부처와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연구기관 및 시민단체 등의 호응을 기대해 본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