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기업인] '전자부품업체 사장' .. 그들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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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품업체는 화려하지 않다. 완제품에 가려서 그다지 스포트라이트도 받지 못한다. 독특한 것을 개발했더라도 세트메이커가 이를 써주지 않으면 개발비조차건지기 힘들다. 그러나 맹장의 명성뒤엔 강병의 노고가 있듯 완제품의 화려함 뒤엔언제나 ''최상의 품질과 최저의 가격''으로 무장된 부품이 있게 마련이다. 컬러 TV 한대가 나오기 위해서는 대체로 2천5백여개의 단위부품이 필요하다. 이중 하나라도 불량이 생기면 TV는 이미 TV로서의 기능을 상실한다. 부품 하나하나가 모두 완벽해야 하듯 부품업체 경영진 역시 속이 꽉찬 이들이다. 경영진 대부분이 이공계 출신의 엔지니어라는 점도 독특하다. 현장 중심의 경영스타일도 이와 무관치 않은 듯하다. 손욱 삼성전관대표부사장은 경기고와 서울대 기계공학과를 나왔다. 엔지니어출신임에도 불구하고 경영학 이론에 밝은 아이디어맨. 지난해 1월 삼성전관대표로 부임하자마자 회사내의 각종 경영혁신 운동을 주도하면서 새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손대표가 요즘 관심을 가지는 부분은 이른바 PI(프로세스 이노베이션). 전국의 전관 사업장과 해외사업장을 돌면서 PI특강에 바쁘다. "품질로 말하자"가 모토. 이형도 삼성전기사장은 기술과 전략을 겸비한 전형적인 삼성맨. 제일합섬 제일모직 비서실 등을 거쳐 전자종합연구소장과 마이크로 총괄부사장등을 역임했다. "경영자는 비전을 만들어 제시하고 이를 솔선수범해야 하며 자기관리를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게 이사장의 경영관. 비서실 근무당시엔 면도날 같은 업무추진으로 회장의 신임이 두터웠다. 새벽 4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조깅을 하고 매주 금요일엔 부산 자동차부품공장에 내려가서 주말을 보내는 등 부지런함으로도 유명하다. 업무엔 빈틈없는 이사장이지만 퇴근후에는 직원들과 어울려 소주잔을 기울일 정도로 소탈한 구석도 있다. 삼성전기가 전자부품업체 최초로 매출 1조원 시대를 열도록 한 장본인. 엄길용 오리온전기 사장은 상공부 서기관 출신으로 (주)대우 대우자판 등을 거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 정.관.재계에 두루 발이 넓고 1년 3백65일 휴일없이 근무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정력적으로 일하는 스타일이다. 엄사장의 가장 큰 장점중의 하나는 특유의 친화력. 처음 대하는 이들과도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데는 일가견이 있다. 민주노총계열의 오리온전기 노조도 엄사장의 말이라면 전폭적으로 신뢰한다고 한다. 엄사장의 친화력을 보여주는 에피소드 하나. 지난해 파업 일보직전까지 갔던 노사분규를 해결하러 엄사장이 직접 구미공장으로 내려갔을 때의 일이다. 협상장소로 향하는 엄사장을 향해 노조원들은 이렇게 외쳤다고 한다. "사장님, 부탁해요" 안기훈 삼성코닝사장은 삼성 공채로 입사해 제일제당 삼성전자 등에서 20여년간 관리.기획업무를 맡아온 이른바 "관리통". 영업.기술분야는 석유화학에 근무할 때가 처음이었으나 이때 컴퓨터 통합시스템을 개발해 주위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사원이나 간부의 잘못에 대해서는 눈물이 찔끔나오도록 호되게 질책한다. 단 뒤끝이 없어 믿고 따르는 부하직원들이 많다고. 95년말 삼성코닝 대표부사장으로 부임하자마자 조직 슬림화, 사업전략 변경 등으로 긴축경영을 실시해 한발 앞선 불황타개전략을 세웠다는 평을 듣는다. 조희재 LG전자부품사장은 금성사로 입사해 창원공장장 오디오사업부장 LG마이크론 등을 두루 거친 전형적인 "LG맨". "직원들이 회사의 가장 큰 고객"임을 늘 강조할 정도로 부하사랑이 각별하다. 지난해 LG전자부품과 알프스 전기와의 합작관계를 청산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올해는 이를 계기로 LG전자부품 "제2창업의 해"로 만들겠다는 의욕에 불타고 있다. 왕중일 대우전자부품 상무는 귀공자 타입의 외모이나 성격은 무척 소탈한 편. 경기고와 서울대 화학과를 나왔다. 직원들과 어울려 술잔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 "실패하는 직원은 용서할 수 있지만, 도전하지 않는 직원은 용납할 수 없다"는 게 임원회의 때마다 강조하는 말.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