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광직칼럼] 부패를 전통이라니... .. < 출판국장 >

노태우정권 말기의 일이다. 오랫만에 옛 친구가 찾아와 자기 집을 지을 때의 이야기를 털어놓아 배꼽을 잡고 웃은 일이있다. 어렵게 건축허가를 얻어내고 인근 주민들의 텃세를 무마시킨 뒤에도 천신만고 끝에 공사가 어느정도 마무리돼 준공검사를 받을 때 일이 벌어졌다. 감리사는 공사가 진행될 때는 잘 나타나지도 않다가 몇몇 부분을 고치지 않으면 안된다고 엄포를 놓았고 타협끝에 구청 건축담당관리가 베푼 호의에 따라 그가 시키는 대로 건물뒷벽과 옹벽사이를 합판으로 연결시킨 뒤 그 위에 살짝 흙을 덮어 위장했다. 사진만 찍은뒤 철거하면 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그러나 준공검사날 현장에 나온 관리는 다른 인물이었다. 그는 사전에 뀌띔을 받지 못했는지 위장한 합판위에 올라섰다가 깊이 3m나 되는 함정에 빠져버렸다. 천만다행으로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 그 친구는 당시의 상황을 웃지도 울지도 못할 황당한 순간이었다고 실토했다. 친구의 이런 하소연을 듣고 난 뒤에야 필자는 "집을 처음 지어본 사람은 사회주의자가 되고 두번째 지으면 공산주의자가 된다"는 말을 어렴풋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기름 먹인 가죽이 부드럽다"는 우리 속담처럼 요소요소에 뇌물만 주면 안될 일도 성사된다는 사실도 실감했다. 그리고 이것이 정권교체기의 일시적 부패 현상이 아니라 관행이었음도 깨닫게 됐다. 그뒤 부정부패척결을 내세운 김영삼정부가 들어서고 사정의 태풍이 휘몰아쳤다. 많은 고위 공직자들이 감옥에 갔고 급기야는 두 전직대통령도 수의를 입었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부정부패는 근절되기는 커녕 점점 더 확산돼 최근에는 김대통령의 측근들이 구속되고 대통령의 아들마저 구설수에 오르내리는 지경으로까지 치닫고 있다. 경제불황문제도 심각하지만 국민을 실망시켜 "아무것도 되는 일이 없는 세상"으로 만든 문민정부의 몰골은 지금 말이 아니다. 미국 텍사스주립대에서 강의하고 있는 세계적 규범철학자 승계호 박사는 지난 95년 계간 "사상"에 발표한 "문화와 정치"라는 논문에서 한국의 부정부패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그는 부정부패가 해방후에 새로 생긴 사회현상이 아니라 놀랍게도 우리 전통문화유산 가운데 하나라고 지적했다. "벼슬 자리에 앉으면 뇌물을 받는 것이 특권이었고 백성은 뇌물을 바치는 것이 예의였다. 뇌물이 제대로 들어오지 않으면 공권력을 동원해 강탈하는 것이 정해진 통칙이었으므로 백성은 울며 겨자먹기로 뇌물을 예물로 바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또 일제가 오히려 관공서에 만연된 부정부패를 뿌리째 뽑으려 했으나 국권이 회복되자 전통적인 악습이 유령처럼 되살아났다고 분석한다. 그러나 승박사의 이런 분석에는 40여년을 미국에서 살아온 노학자의 편견이 도사리고 있음을 본다. 구한말에 매관매직이 성행했다거나 일부 양반이 서민을 수탈한 사실은 인정되지만 그것은 유교의 교화기능이 마비된 말기에 일어난 두드러진 타락상일 뿐이다. 초.중기에는 고위 공직자가 문어 한 마리나 들깨 한 되, 콩 한말을 받아도 탄핵을 받아 엄중하게 문책당했다. 부정부패에 대한 엄격한 법률이 제정돼 있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이같은 사실들이 셀 수 없이 많이 기록돼 있다. 더구나 조선사회를 지켜온 지주가 됐던 인물들은 벼슬아치들이 아니라 청렴결백한 선비들이었다. 그들은 초야에 묻혀 살았지만 나약한 지성인이 아니라 죽음을 무릅쓰고 임금에게 간언하고 나라가 위태로울 때면 의병을 일으켜 국방일선에 나서기도 했다. 항일독립운동의 원동력이 된 것도 선비정신이다. 퇴계 이황에게 어떤 사람이 말린 고기와 필묵을 보내왔다. 그는 필묵은 받고 말린 고기는 돌려보냈다. 제자들이 그 까닭을 묻자 퇴계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고 한다. "보낸 사람의 선물이 절교할 만큼 크지 않았기 때문에 가벼운 물건은 받아서 절교하지 않는 뜻을 보이고 중한 물건은 물리쳐서 그 사람의 잘못을 깨우친 것이다" 선물 하나를 받아도 화합과 교화를 함께 신중하게 생각하는 선비들의 훈훈한 마음을 느낄 수 있는 이야기다. 그에게 물욕은 전혀 없었다. 명종조에 한산군수로 가 있던 선비 김렴에게 한양의 고관이 그곳의 명산인 생선과 산채를 보내달라는 편지를 보냈다. "고기는 천길 물 밑에 있고 나물은 만첩 산속에 있고 벼슬하는 사람이 고기잡이 늙은이도 나물캐는 여자도 아니거늘 어떻게 얻어낼 수 있단 말이요" 김렴의 답장에는 이렇게 선비다운 기개가 넘치고 있다. 요즘 문민정부의 부정부패사건이 드러나자 세간에서는 승박사처럼 부정부패가 고치기 힘든 전통문화유산이라고 체념해 버리는 사람들이 많은것 같다. 그러나 부정부패는 결코 전통문화유산이 아니고 불치병도 아니다. 이 꼴이 된 것은 정치지도자를 비롯한 우리 모두의 책임이 더 크지만 우리의 문화적 전통을 단절시킨 일본이나 돈을 가치관의 정상에까지 끌어 올린 미국의 영향도 컸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지금 우리 사회는 양식도 상식도 통하지 않는 혼란속에 빠져 있다. 우리 윤리의 기본인 예란 "인간행동의 마땅한 법칙"을 뜻한다. 최소한의 도덕을 기초로 삼아서 옳고 그름을 이성적으로 판단하도록 하는 것이 성숙한 사회라지만 우리에게 그런 사회는 아직 멀게만 느껴진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