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칼럼] 그리운 자연의 품 .. 오청미 <패션디자이너>

서울강북 평창동에 살던 아름다운 시절이 있었다. 집 뒷길 가까이에 혜원사라는 조용한 절이 있어 한 30분만 오르면 평화로운 곳에 이르렀다. 계곡으로 흐르는 물, 넓다란 바위, 소나무 사이사이 피어있는 진달래 꽃덤불, 봄바람이라도 불어 올라치면 그곳이 바로 무릉도원이다. 서울 중심가에서 20분 정도 거리에 이러한 곳이 있다는 것은 서울시민으로서도 대단한 행운인 만큼 평창동민인 나로서 더할 나위기 없었다. 여기서부터 시내쪽으로 조금 내려가면 세검정이 보이는데 북방의 전쟁터에서 돌아오다가 휴식을 취하기도 하고 북한산에서 흘러 내려오는 맑은 물로 피물은 칼을 씻었다는 곳이다. 또한 이제는 높아진 차도에 묻혀 버린 퇴락한 대원군의 별장이 문화재 대우를 받지 못하고 방치되어 있다. 이곳 북산산과 인왕산에는 봄이면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핀다. 검은 바위산 색과 진달래 꽃색의 조화는 천화일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봄이 되면 홍은시장과 평창동을 오가는 즐거움에 흠뻑 빠지기도 했다. 그러나 북한산 인왕산 북악산의 자락이 만나는 자하문 밖과 세검정 그리고 능금나무들 그 자연의 모습은 어디로 갔을까! 지금 우리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진달래가 만발하던 바위산은 깍이어 재개발 아파트가 흉직하게 들어서 있다. 북한산 뒷길은 수평으로 길게 깍이어 시뻘건 몸을 들어낸 체 도시 고속도로가 개통될 날만 기다리고 있다. 도시개발 이라는 명문으로 서울은 치명적으로 병들어 가고 있는데 우울한 소식은 끊이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한탄강의 물고기들이 방류한 폐수로 몸살을 당하고, 배를 허옇게 드러내 놓고 널부러져 있는 낙동강 하구 고기들의 모습을 뉴스로 본지 엇그제었는데, 시화로 철새들의 죽음은 더욱 어처구니가 없다. 지리산 반달곰을 밀렵하더니 그도 부족한 모양이다. 이젠는 철새들마져 살륙하려 찝차까지 대동하고 달려들고 있다. 인간은 자연없이 숨을 쉴 수 없다. 삶에 지킬수록 자연의 품이 그리워진다. 우리가 보고싶고 쉬고 싶을 때 자연은 우리를 기달릴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