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 '세상 빛깔' .. 유안진

흑백의 세상도 천연색으로 뵈던 때는 대접으로 퍼 마신 뜨물술에 젖었어도 사랑 야망 데모 농활......같은 때묻지 않은 고민으로 맑은 눈물 뿌렸는데 왜 이런가 이제는 유리잔에 얼음 채운 말강술을 마셔도 눈곱 낀 눈물조차 말라버리고 구린내 풍기며 떠도는 이야기로 뻣뻣이 굳어가는 혀끝을 풀어봐도 총천연색 이 봄날은 어둑어둑 저무는 흑백으로 보이다니. 시집 "누이"에서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