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섬우화] (75) 제2부 : 썩어가는 꽃 <10>

우미연이 아무 한 일도 없이 오빠의 사랑과 덕을 너무 많이 본 것이 올케에겐 너무 괘씸하고 기분 나빴다. 그런 여러 사정들이 우여사로 하여금 능력있는 올케에게 제인의 일을 의논할 수 없는 외톨이로 서울생활을 시작하게 한 것이다. 미연은 궁전의 불빛이 점점 밝아지고 요기를 뿜어내는 시간이 되었을때,비리비리 마른 청년과 제인이 입구에 나타나더니 그 앞에 스르르미끄러지듯이 서는 자가용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본다. 그녀는 달려 나가서, "얘, 제인 제인" 하고 불렀지만 한번 힐끗 그녀를 돌아다본 제인은 그냥 차속으로 들어가 버리고 만다. 이미 이성을 잃은 것 같다. 눈동자가 멀리서 봐도 풀려 있다. 맥이 빠진 우여사는 제과점을 나와 터덜터덜 걸어서 아파트로 돌아온다. 생전 처음 제인이 손님과 러브호텔로 가는 것을 목격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면 우여사는 별로 큰 걱정을 안 할 것이다. 그녀는 다시 죽음처럼 고통스러운 연상작용 때문에 가슴에서 불이 펄펄 타오른다. 그것으로 끝난다면야 얼마나 좋으랴. 몸을 파는 것으로 끝난다면야! 제인은 이번에는 어머니말을 꼭 따르겠다고 울면서 맹세했었다. 다시는 약을 안 하기 위해 완쾌될 때까지 입원해서 이번에야말로 어머니를 실망시키지 않겠다고 맹세를 한지 다섯시간도 안 됐다. 그녀는 자기 침실에서 흘러나오는 푸른 불빛을 보며 남편이 다른 여자와 침대에 누워있는 현장을 보고온 듯한 절망감에 후드득 후드득 운다. 남편을 잃은 여인의 고통도 이 보다 더하지는 않으리라. 그녀는 가슴이 찢어지는것 같은 아픔을 눌러 참으며 엘리베이터를 향해서 걸어간다. 경비실 불빛이 가까워오자 그녀는 뺨으로 흘러내린 눈물을 닦아내며 중얼거린다. "오빠, 나는 어떻게 하면 좋지요? 오빠, 미연이가 보여요? 영혼이 있다면 나를 좀 돌봐주세요. 오빠, 나를 구해주세요, 네? 나는 이제 무얼 어떻게 하면 좋지요?" 그녀는 키작은 나무들 앞에 놓인 의자에 주저앉는다. 차고 시린 의자에 주저앉자 다시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린다. "하느님, 왜 저에게 이런 시련을 주십니까? 하느님, 제발 좀 그만 해주세요. 이러다간 제가 먼저 자살이라도 할것 같아요. 하느님, 저를 정말 버리지는 않으시겠지요? 제인은 곧 돌아오겠지요? 나하고의 약속을 지키겠지요?" 미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어둠속에 앉아서 하느님께 빌어본다. 미국에서 교회에 나가 금식기도를 한 후에도 제인이 집에 안 들어왔을때 그녀는 하느님의 존재를 무시하며 통곡했었다. 그리고 아주 오랜만에 다시 애끊는 마음으로 하느님을 찾은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3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