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C 패션산업 주역] 노승은 <디자이너>..상반된 요소 결합

디자이너 노승은. 진태옥씨의 딸, "프랑소와즈 옴므"와 "베베 프랑소와즈" 디자인실장으로만알려졌던 그가 오랜 침묵을 깨고 전면에 나섰다. 96년 12월 "노승은" 브랜드의 런칭쇼를 계기로 한 출발은 97년 3월 파리컬렉션 아트모스피어부문 전시회 참가로 이어졌고 이곳에서 "마리아 루이자"(파리) "크리스틴 러구엔"(도쿄) 등 세계유명 편집매장의 주문을 받았다. "요원한 꿈이라고 생각한 파리입성이 뜻밖에 빨리 이뤄져 기쁨과 당혹감을동시에 느낍니다. 10여년간의 수련이 값진 것이라는 확신을 얻게돼 즐겁구요" 그가 (주)진태옥에서 일한 것은 86년부터이고 패션공부를 시작한 것은 81년이다. 미국 FIT에서 패션을 공부하기전 그는 치과의사 지망생(미국 하와이대 3학년중퇴)이었다. 수학과 과학을 좋아하는 치밀한 성격에 전문직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자연스럽게 택한 길이었다. 그러나 "재능이 있다"며 뒤를 이을 것을 강권하는 어머니의 뜻을 이기지 못했다. "결정과정은 어려웠지만 패션학교에 들어간뒤부터는 아무 잡념이 없었다"고. 졸업후 1년반동안 "줄리 프란시스"라는 미국회사에서 일한뒤 85년 FIT 고급과정을 마치고 (주)진태옥 미국지사에 합류했다. 그가 한 일은 "프랑소와즈"와 "베베 프랑소와즈" 제품의 미국 수출. 90년 귀국까지의 5년간은 어려운 여건속에서 실무를 익힌 황금같은 시간이었다. 귀국후 6년동안 남성복과 아동복 디자인실을 책임지고 96년부터 이사로 재정및 관리를 맡았다. 같은 해 가을부터 자기브랜드도 준비하기 시작했다. ""프랑소와즈"는 기본적인 틀을 지켰습니다. 그건 진선생의 개성이자 그 시대의 특성이기도 하죠. 실험성이 강하고 파격적인 것을 좋아하는 저는 언젠가는 취향을 1백%발휘하고 싶었어요. 그 결과가 바로 제옷 "노승은"입니다" 첫 작품에서 "벨벳(고급스런 상류사회) 언더그라운드(가난하고 어두운 세계)"라는 주제로 소재 실루엣 등 여러 상반된 요소를 결합해낸 그는 4월말서울 청담동 진태옥 본사옆에 매장을 내 소비자와 직접 만난다. 10월에는 파리 프레타포르테 쇼도 고려중이다. 시작이 조금 늦어도 허튼 발걸음을 떼지 않는 사람. 디자이너 노승은에게 기대를 거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4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