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고싶었습니다] 김한태 <한국독림가협회 회장>

요즘 초등학교 5학년 2학기 사회과탐구교과서 79쪽을 보면 ''숲의 왕국''을이룬 ''조림왕'' 할아버지 얘기가 나온다. 바로 현재 한국독림가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김한태(75)씨다. 1922년 전북 임실군에서 태어난 김회장은 지난 60년 10년간의 경찰공무원생활을 마친이후 지금까지 임실과 진안 일대 6백50만평에 모두 3백30만그루의 나무를 심어 ''나무할아버지''로 불리고 있다. 이같은 업적을 인정받아 지난 91년엔 UN산하 세계식량기구(FAO)로부터산림부문에 수여하는 공로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헐벗은 산이 안타까워 심기 시작했다는 어린 묘목들은 강산이 세번 바뀌고도 남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이제 팔순을 앞둔 자신을 한참 내려다볼만큼 거목으로 성장해 울창한 숲을 만들어 놓았다. 김회장은 식목에만 열심이었던게 아니라 낙엽송을 증기로 말려서 단단한목재로 만드는 방법을 개발해 냈는가 하면 산에서는 버섯도 재배하고 닭청둥오리도 기르는 등 복합임업의 표보능 보여주고 있다. 또 성수산에는 성수임업연구원을 설립, 학생들에게 나무사랑을 가르치고있고 지난해에는 성수산자연휴양림을 개장했다. 김회장을 성수산중턱에 자리잡은 연구원에서 만나봤다.========================================================================[ 만난 사람 = 이창호 ] -나무를 처음 심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궁금한데요. "나무를 심게된건 경찰전문학교를 나온후 전북도경형사계장을 지내다 그만둔 60년이후부터입니다. 평소 산을 좋아해 자주 등산을 하곤 했는데 그때마다 헐벗은 산이 안타까웠습니다. 나무를 심어 15년정도만 기르면 사업성이 있다고 판단한데다 당시 마땅한 취직자리도 없어 결심하게 됐죠.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전답 1만평을 조금씩 나누어 팔아 임야를 매입했기 때문에 재정적인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60년대 초만해도 임야 한평이 50전정도에 불과했거든요. 게다가 목재가공공장과 표고버섯재배에서 어느정도 수익도 나왔고 당시에는정부가 묘목도 그냥 주다시피 했어요. 그후 70년대 후반부터 이농현상때문에 나무를 심을 젊은 사람들이 없어 고생좀 했지요" -주위에서 반대가 만만치 않았을텐데요. "당연하죠. 쌀농사는 몇달만 고생하면 돈이 나오는데 10년 20년씩 기다려야 하는 나무사업을 하겠다고 나선다며 아버지는 물론이고 숙부까지 나서 미쳤다고 몰아세웠습니다. 식목사업을 하고나서 언젠가는 2백70정보나 되는 산을 산후 나무벨 돈이 없어 주조장을 하던 초등학교 동창에게 30만원만 빌려 달라고 한적이 있습니다. 그랬더니 그 친구가 하는 얘기가 자기는 누룩과 쌀을 술독에 넣고 발효시키는데 걸리는 1주일을 못기다려 술독에 양잿물을 넣어 술을 빚는데 나처럼 10년 1백년 앞을 내다보고 사는 녀석이 어디 있느냐며 미쳤다고 하더군요" -지금까지 심은 나무들의 수종은 어떻게 되나요. "낙엽송이 40%, 리키다소나무가 30%로 가장 많고 잣나무 편백이 각각 10% 정도씩 됩니다. 나무를 심기 시작할때 당시 정부는 산림국인 독일이 리키다소나무로 울창한것을 보고 리키다식목을 할당 권장했지만 우리나라엔 우리토양에 맞는 잣나무같은 수종을 심어야 한다고 주장해 싸우기도 많이 했죠" -땔감으로 쓰던 시절에 비하면 산에 나무가 많아졌잖아요. "60년대만 해도 산이 그야말로 시뻘겄었죠. 요즘엔 산에 나무는 무성한데 산에 가서 담배피우고 쥐불놀이도 하니까 산불이 많이 나서 걱정입니다. 산불에 대비해 도마다 헬기 한대씩은 비치됐으면 좋겠어요" -나무 때문에 외국도 많이 돌아다니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나무를 심을때 특별히 신경써야 할 점이 있습니까. "우리나라의 산이 가파르긴 해도 산림국인 독일이나 스웨덴에 비해 토질이나 기후는 크게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나무는 해발고도가 2백~5백m 정도인 지역에서 가장 잘 자랍니다. 방향으로 친다면 북향이 가장 좋고 그다음이 동향 서향 남향순입니다. 북향은 햇빛이 안비쳐 수분보존이 잘되기 때문이지요. 심는 방향에 따라 수종도 달리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동안 산을 살피러 세계일주를 7번정도 하면서 내린 결론은 그 땅에 오래전부터 자라던 나무가 적지적수라는 사실입니다. 나무를 심은뒤에는 특히 활엽수의 경우 맹아갱신을 해줘야 곧게 잘 자랍니다. 나무를 베어낸뒤 자라난 맹아를 3년정도 지난후 2~3개만 남겨 두고 모두 잘라 버리며 다시 20년이 지나 곧게 자란 가지 하나만 남기고 다 쳐줘야 합니다. 가지가 많으면 위로 못 크고 옆으로 자라죠. 쳐낸 가지는 표고버섯재배에 사용하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일본은 이 맹아갱신을 잘해줬기 때문에 숲이 울창합니다" -낙엽송을 증기로 말려서 단단한 목재로 만드는 방법을 개발하셨다는데. "70년대 전북지역 레슬링협회장을 할때 선수들을 데리고 일본 북해도로가서 한.일 친선경기를 갖곤 했습니다. 당시 그곳에서 낙엽송을 써서 마루판을 만든걸 봤는데 색깔이 참 좋더군요. 그후 일본을 방문하면서 낙엽송에서 진을 빼내는 기술을 갖고 있는 건조보일러공을 알게돼 매수하다시피해서 노하우를 배웠습니다. 또 그때 무렵에 표고버섯종균을 땀냄새 나는 선수들 운동복에 숨겨 들여 온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간신히 통과했는데 우리 검역소에서 못가져 가게 하는 바람에 애를 먹었죠. 어쩔수 없이 문익점 "선배" 일화를 들먹이며 호소, 간신히 반입에 성공한적이 있습니다" -나무를 심기 위한 것이긴 하지만 땅이 상당히 많은 것으로 아는데. "한때 6백50만평까지 있었는데 휴양림에 시설들을 짓느라 상당부분 팔고 지금은 5백만평정도 됩니다" -지금까지의 삶에 후회를 해보신 적은 없나요. "어려운 가운데서도 나무와 함께한 나의 인생 때문에 교과서에도 소개가 됐지 않습니까. 후회는 없습니다. 모레 죽는다고 해도 내일까지 나무를 심을 계획입니다" -앞으로 임업정책이 나아갈 방향을 어떻게 보시는지. "우리나라에서 임업이 없어진지 오래됐습니다. 돈벌이가 안되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열심히 해보려는 사업가도 없고 정부 지원도 부족하기 짝이 없습니다. 소득 1만달러시대가 됐으니 이제 모두가 임업에 관심을 보여야 합니다. 규제는 풀고 지원은 늘려야 합니다. 농협 수협 축협등에 조성된 기금에 비하면 임협에서 쓸수 있는 돈은 수백분의 1에 불과합니다. 융자제도 수입관세환급문제등도 상대적으로 열악한데 앞으로 시정돼야 합니다. 스웨덴같은 임업국으로 성장하려면 아낌없는 투자가 있어야 합니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4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