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파일] (신세대 창업만세) 서광훈 <한풀수경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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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풀수경" 무공해 농법으로 각광받는 수경재배의 선두주자다. 흙이 아닌 물로 식물을 키워내는 차세대 농법. 창립 멤버 5명 전원이 서울대 농과대학원 석사출신이란 점도 튄다. 초엘리트 신세대 농부들이 모인 셈이다. "한풀". "커다란 풀"이란 표면적 의미 뒤엔 농학도의 한을 풀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농업부문에선 산학협동이 아예 이뤄지고 있질 않습니다. 학교 연구실에선 최첨단 농법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막상 이것을 적용할 기반은 전무한 형편이거든요. 기껏 개발한 신기술들은 결국 외국으로 팔려나가고 맙니다" (서광훈 사장.30) 그야말로 "죽쑤어 개주는" 경우를 수도없이 목격했던 것. 그리하여 서사장은 지난 91년 대학원 동기 4명을 모은다. 6년여 갈고 닦은 전문지식을 현장에서 꽃피우자는 결의에 가득찬 젊은 농군들. 나름대로 철저하게 농촌행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농장견학, 예행농사, 농가실습.... 틈틈이 경영학 공부도 잊지 않았다. 93년. 드디어 경기도 주내면 산기슭에 한풀수경이란 간판을 내걸고 "진짜 농사"를 시작했다. 첨단 시설에서 일궈내는 과학영농. 농약이라곤 한방울도 닿지 않은 신선하고 깨끗한 야채를 재배한다는 것이 포부였다. 하지만 출발부터 벽에 부딪쳤다. 이론이 영 빗나가는 것이었다. 규모가 커질수록 데이터 오차도 엄청나게 커졌다. 첫 수확에서 맘에 안드는 것들을 버리고 나니 남는 것이라곤 고작 한바구니. 1억여원을 투자해 거둔 매출이 50만원이었다. 거듭되는 연구와 실패."한번만 더"가 셀 수없이 이어졌다. 수많은 시행착오로 얼룩진 1년이 지나자 작황이 서서히 좋아졌다. "실제 상황"에 적응하기 시작한 것이다. 생산이 궤도에 오르자 매출 증가세에 속도가 붙었다. 깻잎 등 쌈전용 채소에서 시작한 아이템을 샐러드용 양채류까지 하나씩 늘려나갔다. 95년부터는 정성껏 키운 채소에 "녹색선물" "행복나라"란 브랜드를 달아 백화점으로 내보냈다. 최고의 품질을 자부한 만큼 비싸도 팔릴 것이란 자신이 있었다. 예상은 맞아 떨어졌다. 폭주하는 주문에 생산이 따라 가질 못했다. 하지만 품질 관리의 끈을 늦추진 않았다. 품질에 대한 소비자들의 신뢰가 경쟁력임을 알기 때문이다. 현재 월매출은 2천5백만원. 상반기 매출목표는 5천만원, 하반기엔 1억원을 목표로 잡고 있다. 이를 발판삼아 몇년안에 괌이나 일본 등 해외로 진출, 세계적인 농업회사로 발돋움하겠다는 계획도 세워둔 상태. 하지만 높은 순익달성은 중간 기착지일 뿐이다. 한국 농업 바로세우기. 이 궁극적 꿈을 이루기 위해 지난 1월에는 농업컨설팅 회사를 세웠다. 첨단 시설을 지어놓고도 사용하질 못하는 농가에 운영 노하우를 지원하기 위해서다. "정부가 해마다 농촌지원금으로 몇십조씩 쏟아붓고 있지만 죄다 시설 늘리는데만 쓰여집니다. 하드웨어가 번드르르하면 뭐합니까. 그냥 놀고 있는데" 5천평 첨단 온실에서 개를 키우는 현실. 외형성장에만 치중하는 농업정책의 헛점을 꼬집는 말이다. 물론 농업살리기를 홀로 감당하기는 벅차다. 이를 위해 당국의 협조를 요청하고 있다. 뜻있는 성원세력도 상당수 확보한 상태. 2000년에는 뭔가 보여주겠다는 계획이다. ""농자천하지대본"은 21세기에도 변할 수가 없습니다. 먹는 것을 떠나선 살수가 없으니까요. 개방의 파도를 헤쳐나갈 선봉장.한국 농업을 이끌 초일류 농업회사로 키워내고 싶습니다" 한풀 온실속에서 커가는 파릇파릇한 야채들틈에선 한국 농업이 기댈 한자락 희망이 함께 자라나고 있는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4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