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시장경제 원형을 창출하자 .. 좌승희 <한국경제연>

좌승희 우리경제는 매우 어려운 상황에 있다. 경쟁을 제한해 온 경제제도운용이 고비용.저효율의 경제구조를 심화시켰고,베끼고 따라잡던 안이한 기업경영방식은 교역조건 악화에 취약한 산업.무역구조를 만들었다. 최근 엔화약세-달러강세로 촉발된 수출부진은 기업의 경영수지를 악화시켰을 뿐아니라 나라의 경상수지 적자 폭 확대를 가져와 외환수급에도불안이 가중되고 있다. 더구나 노동법 개정파동으로 노동시장 유연화가 유보되었고, 한미.삼미 재벌기업의 부도로 우리 경제의 대외신용도마저 떨어졌다. 국민도 기업도 "경제 살리기"에 나서려 하나 근본을 다루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행정력으로 눈에 보이는 어려움을 급히 서둘러 간단히 해결하려드니힘만 들고 성과가 나타나지 않는다. 시장의 힘을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경제가 현재의 어려움에서 벗어나려면 경제운영 전략을 바꾸어야 한다. 과감하게 시장의 힘에 의존해야 한다. 행정력의 감시와 통제로는 경제를 바로 세울 수 없다. 정부의 지원과 보호로도 산업의 경쟁력을 일으킬수 없다. 우리 관료의 현실장악능력이 부족해서 경제가 어려워지고 산업이 약해지는 게 아니다. 개방체제, 열린 경제에 맞지 않는 정부개입때문이다. 한보사태는 정부능력에 대한 과신과 정부지원에 의지해 거대기업을 만들려던 한 기업인을 솎아 낼 수 없을 정도로 취약한 정부주도 산업정책체제가 빚어낸 비극이다. 민간기업이 벌이는 사업의 종류와 규모, 그리고 투자방식까지도 아직도 행정관료가 정하니 업무는 바빠지고 조직은 커지고 규제는 자꾸 늘어난다. 돈을 빌려주는 은행이 상업적인 사업성 판단보다는 정부보증이나 정치흥정에 매달리니 기업인들이 시장의 감시를 무서워하지 않는다. 시장이 살아있는 못하니 소비자는 무시되고,투자자는 시장을 떠난다. 시장경제에서의 경쟁과 감시는 행정관료들의 선택과 판단보다 우월하다. 우월하다는 얘기는 비교우위가 있다는 의미이지 결코 시장경제가 모든 정책의 완벽한 해답이라는 뜻은 아니다. 잘못이 있을때 고쳐 나갈수 있고, 균형에서 벗어났을때 새로운 균형을 형성한 능력이 있다는 뜻이다. 그동안 우리는 권위주의적인 정치체제와 정부주도 경제운영방식에 길들여져왔다. 성장을 지탱해 나갈수 있는 생산성이나 경쟁력보다는 집단주의적인 사고방식이 지탱해 주는 외형성장과 규모경쟁에 익숙해져있다. 재벌그룹의 선두가 누가 되느냐가 중요한 만큼 정부도 어느 부처가 얼마나 더 많은 예산과 힘을 쓰느냐에 매달리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경쟁은 지배력과 장악력을 과시하는 경쟁이었지 시장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투명하고 수요자가 행복해지는 경쟁이 아니었다. 시장경제는 분명한 경쟁과 책임논리를 가지고 있으며 시장안에 지배와 종속은 존재하지 않는다. 시장경제는 정치적 질곳을 거부하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유에는 책임이 수반되다는 도덕적인 성숙이 있는가 하면, 나의 권리 못지 않게 상대방의 권리도 계약에 의해 존중된다는 사회적 자각도 있다. 노력의 댓가와 정당한 이윤으로 형성된 자산을 소유하고 자유의지대로 처분할수 있는 사적재산권이 중시되며,물질적인 부의 성장을 뒷받침해주는 근로윤리와 도덕자본도 공동체적 연대감과 함께 자라난다. 지금 우리는 과거의 잘못을 응징하고 남의 허물을 밝혀서 한국경제를 "정의로운 상태"로 만들려고 하고 있다. 그러나 경제는 언제나 발전의 과정에 있으며 이러한 "자연스러운 진화과정"에 정의를 요구하는 것은 많은 비용을 지불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정부의 개입과 간여가 심했던 과거에 일어난 부정부패와 비리는 정부권한이 축소되고 관료개입이 무력해지면 자연히 없어진다. 기업경영이 시장에서 투명하도록 만들면 비자금도 뇌물도 관료주의도 다 사라진다. 질과 가격이 열린 세계경제 무한경쟁에 노출되어 있다면 기업은 관료에게 매달리거나 은행에게 구걸하지 않는다. 고객에게 매달린다. 고객이 가장 원하는 것을 잘해줄 수 있는 기업 내의 종사자를 최상으로 대접할 것은 분명하다. 평생을 사회주의 사상에 잘못된 뿌리가 있음을 공격해 왔고 공산준의 국가의 건설과 몰락을 지켜봤을 만큼 오래 살았던 프리드리히 하이에크(1899~1992)는 최근에 출판된 그의 마지막 저서 "치명적 자만"에서 "모든 변화가 정의로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진화의 중단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했다. 소유의 다양한 형식과 대상 그리고 그것을 이용할 권리를 인정하지 않았던 사회주의가, 어떻게 인간으로부터 창의와 의욕을 빼앗았고, 인류의 반 이상을 오랫동안 빈곤한 상태에서 너무르게 했는가를 경고했다. 지금 우리 경제에 정치.사회적 불안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 있다. 우리의 21세기 준비는 시장경제의 원형을 창출하는데서 출발해야 한다. 첫째, 시장경제의 창달을 위해서는 "소유의 안전성"이 확립되어야 한다. 정치가 노력해서 가진 자를 고통스럽게 하고,저축해서 있는 자를 불안하게 해서는 안된다. "누구에게나"열심히 노력한 만큼 더 가질수 있는 기회가 보장되도록 해야한다. 부모는 고생했어도 자식만은 편안하게 해주겠다는 재산축적과 양도상속도 규칙에 따른 경제행위라면 질시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해야한다. 둘째, 시장경제가 번창하기 위해서는 "교환의 기회"를 확대해야 한다. 시장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거래는 값을 치르고 물건의 교환이 이루어지는 동의에 의한 양도이다. 세계화.정보화.민주화 사회가 인류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은 누구에게나 더 많은 기회를 보장해 주는 것이다. 시장을 열어 싸고 좋은 제품이 많이 들어오게 하고 더 나은 기회를 찾아 사람과 기업이 국경을 너머 마음껏 경제활동을 펴게 해야 한다. 셋째, 시장경제가 튼튼히 자리잡기 위해서는 "계약의 성실한 수행"이 보장되어야 한다. 정부부터 모범을 보이고 기업은 계약준수의무를 생명으로 알아야 한다. 정부는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정치권력을 행사하는 기관이다. 기업은 국민이 참여하는 자발적인,일하는 조직이다. 정부와 기업이 약속을 지키는 행위에 모범을 보여 국민을 무시하지 않는다면 국민은 더 창의와 열의를 가지고 스스로를 위해 열심히 뛸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4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