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사회 명암 드러낸 여성영화 눈길..'아메리칸 퀼트'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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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은 여성영화의 달" 제1회 서울여성영화제가 열린 달 4월에는 어느 때보다도 많은 여성영화들이 관객을 기다리고 있다. 중국 근대사를 뒤흔든 여걸들의 이야기를 담은 "송가황조", 마피아에 대적하는 2명의 레즈비언을 그린 "바운드", 따뜻한 모성애로 얼어붙은 사람들의 마음을 녹이는 과정을 묘사한 "스핏파이어 그릴" 등이 스크린을 장식하고 있으며 26일에는 미국의 여성영화 2편이 관객들과 만난다. "아메리칸 퀼트" (감독 조셀린 무어하우스)와 "셋 잇 오프 (Set it off.감독 F 게리 그레이)"는 여러 면에서 상반된 영화. "아메리칸 퀼트"의 주인공이 백인 중산층 여성이라면 "셋 잇 오프"의 등장인물은 흑인 빈민여성들이고, 전자가 혈연과 전통을 얘기할 때 후자는 뿌리없이 떠도는 고된 삶을 얘기한다. 전자가 많은 시행착오에도 불구하고 영원히 아름다운 사랑의 힘을 말할 때 후자는 양육비가 없어 아이를 뺏긴 미혼모와 돈 때문에 윤락에 빠진 빈민가 소녀를 묘사한다. 즉 "아메리칸 퀼트"가 아름다운 옛시절에 대한 잔잔한 향수라면 "셋 잇 오프"는 출구없는 상황에 대해 온몸으로 부르짖는 절규다. "아메리칸 퀼트"는 우선 막강한 출연진으로 관객의 눈길을 끈다. 미국 최고의 청순미 소유자로 꼽히는 위노나 라이더가 결혼을 앞둔 대학원생 (핀), "신의 아그네스"의 수녀 앤 밴크로포트가 핀의 이모할머니,93년 클린턴 미 대통령의 취임식에서 축사를 낭독한 시인겸 배우 마야 안젤로우가 이웃 흑인할머니 (안나)로 나오며 96년제작 "로미오와 줄리엣"의 줄리엣 클레어 데인즈도 조연으로 참여한다. 감독 조셀린 무어하우스는 여성영화의 고전"뮤리엘의 웨딩"을 감독한 P J 호건 감독의 아내. 줄거리는 사랑하는 남자친구가 있지만 일찍 이혼한 부모에 대한 기억때문에 결혼을 망설이는 주인공 (핀)이 할머니의 퀼트모임 친구들의 추억을 들으면서 생각을 바꾼다는 것. 여러 조각을 한데 모아 짜맞추는 퀼트는 우여곡절을 겪으며 더불어사는 우리 인생을 뜻한다. 취미클럽을 통해 다양한 삶을 보여주는 방법은 중국 이민여성의 삶을 다룬 영화 "조이럭클럽"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지나치게 잔잔하게 전개돼 극적 호소력이 떨어진다는 평. "바람기 많은 남편도 그대로 포용하고 살아야한다"는 식의 보수적인조언을 젊은 관객들이 받아들일지도 의문이다. "셋 잇 오프 (Set it off.시작하다 폭발시키다)"는 개봉당시 "델마와 루이스 제2편"이라고 불린 도전적인 여성영화. 은행을 턴 강도와 안다는 이유로 졸지에 해고당한 프랭키, 유일한 희망이던 모범생 동생을 경찰의 총탄에 뺏긴 스토니, 돈이 없어서 아이를 유아보호국에 뺏긴 미혼모 티션, 현실이 불만스런 레즈비언 클레오. 이들 4명의 빈민가 흑인여성은 "단 한번만"이라는 단서를 붙이고 은행강도를 시작하고 이것은 이들을 파멸로 끌고 간다. 박진감 있는 빠른 전개는 여성영화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트리며 글래디스 나이트, 샤카 칸 등 유명 흑인가수들의 노래는 극에 밀도를 더한다. 이 영화는 주연이 모두 흑인여성이며 유명스타는 한사람도 없다는 치명적 결함에도 불구하고 96년11월 개봉 첫주에 미국전역 흥행 3위에 올랐다. 17일 막내린 제1회 서울여성영화제 초대작으로도 상영됐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4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