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에세이] 환절기 .. 김승경 <중소기업은행장>
입력
수정
새싹이 돋아나고 개나리가 꽃망울을 터뜨리면서, 긴 겨울이 지나고 봄을 맞는 환절기가 깊어가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한해가 가고 또다른 계절의 순환이 시작되는 출발점에 서 있다는 세월의 흐름에 대한 인식은 일상의 물결 속에 떠밀리며 다니다가 모처럼 자신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어 마음을 가다듬게 한다. 그런데 이런 환절기를 맞게 되면 식욕이 떨어지고 감기도 기승을 부리곤하여 건강이 여간 조심스러워지는 것이 아니다. 계절의 급속한 변화에 신체의 적응속도가 미처 따라가지 못하는 데에서 오는 부작용일 것이다. 노약자들은 감기정도가 아니라 아예 드러눕거나 건강에 그 이상의 치명적인손상을 입는 경우마저 자주 있어 이 때쯤이면 고향에 계신 연로한 부모님의안부가 걱정되는 것이 자식된 사람들의 인지상정일 것이다. 아닌게 아니라 환절기에는 많은 부음에 접하게 된다. 금년에는 유난히도 부음이 많은 것 같기도 하다. 친척, 친구에서부터 직장의 선후배들과 관련된 부음을 들으며 뜻밖이라 놀라기도 하고 안타까와 하기도 하면서, 환절기에는 정말 건강에 주의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러면서 나무들이 겨우내 잠적했던 이파리를 내밀고, 마른 구근들이 싹을틔우며, 개나리며 철쭉이며가 꽃망울을 터뜨리는 일대 생명의 축제가 벌어지는 계절에 왜 그토록 많은 죽음의 소식에 접해야 하는지 신의 뜻에 담긴 아이러니를 의아해하기도 한다. 생명과 죽음이란 두 극단이 미묘하게 공존하면서 더 큰 생명의 축제를 예고하는 것이 환절기가 담고 있는 의미가 아닐까. 개나리가 유난히 아름다운 금년 봄은 우리나라 경제도 역시 유난히 깊은 진통을 겪고 있는 것 같다. 경제의 계절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경제성장률이나 무역적자, 외채문제 등 겉으로 드러나는 지표들이 문제가 아니고 산업과 경제의 체질, 그리고 산업구조 자체에 대한 변화를 요구받고있는 것이다. 고비용 저효율구조에 대한 논란이 이는 가운데 우리 경제의 대들보 역할을했던 중화학공업의 미래에 대한 의문이 새삼스럽게 제기되는 반면, 벤처기업의 활성화에 기대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한편에서는 취업난과 이에 따른 실업률을 걱정하고 있으면서 상당수의 중소기업은 여전히 구인난에 시달리는 노동시장의 왜곡된 구조, 금융시장의 낙후성 등 경제 전반의 체질개선이 강력히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다소 어려운 경제의 환절기를 맞아 힘에 부쳐 하고 있다. 여러가지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제들은 경제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산적해 있어 바야흐로 우리는 장엄한 역사의 환절기에 서 있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문제가 있는 곳에는 언제나 답이 있기 마련이듯, 우리는 땅이 꺼지는 듯한 역경 속에서도 다시 일어나 오히려 더욱 큰 도약을 이룬 경험을숱하게 겪으며 발전해 왔다. 안고 있는 문제가 많다는 것은 오히려 우리 사회의 역동성과 가능성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환절기에는 주변에 일렁이는 바람의 온기와 습기가 다르다. 그러므로 환절기를 이겨 나가는 지혜는 바뀐 환경에 재빨리 적응하는 것이첩경이다. 우선 계절의 변화에 적응할 튼튼한 체질을 평상시에 가꾸어 나가고 겨우내입었던 두터운 외투를 벗어 버려야 한다. 새로운 바람의 온기와 습기에 맞추어 옷을 갈아입고 체력을 보완해 나가야한다. 불모의 겨울을 지나고 환절의 시련을 이겨내면서 마침내 봄꽃들이 여기저기피어나기 시작한다. 얼마엔가 멀리 남쪽 끝에서 벚꽃 소식이 들리더니 벌써 서울에까지 북상하였다고 한다. 연로하신 어머님이 환절기 속에서도 건강하신 것이 왠지 고맙고 반갑게 느껴진다. 벚꽃의 북상과 함께 환절기의 몸살도 서서히 물러가고 그야말로 생명으로만 충만한 계절, 봄이 우리 곁에 온전히 다가오는 것을 실감하기 시작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4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