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한국 대기업의 과제 .. 유장희 <이대 국제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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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보사태와 대선자금 논쟁 등이 우리나라의 정치권을 뒤흔들어 놓고 대통령의 지도력에 의문을 제기하는 지경에까지 이른 것 같다. 덩달아 경제도 회생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금년도 성장률이 경우 5%대에 머무를 것으로 예상되며 경상수지도 작년수준인 2백40억달러선을 훨씬 상회할 것 같다. 실업률이 지난 2월말 현재 3.2%를 넘었다고 하니 경기침체가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세계경제 전반이 잘 나가고 있고 또 우리의 경쟁상대국들도 건실하게 성정하고 있는데 유독 우리경제만이 이렇듯 내리막 길을 걷고 있는 것을 가리켜 혹자는 지도자와 정치권이 경제까지 흔들어 놓았기 때문이라고 질타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누구때문에 경제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고 손가락질을 하는 것은 별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경제침체의 장단기 원인부터 파악하여 단기적인 것은 조속한 시일내에 고치고 장기적인 것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차근차근 고쳐나감으로써 정상을 되찾도록 해야 할 것이다. 또 이러한 개선의 노력을 기울이는 과정에서 정부가 무슨 획기적인 정책을 내놓을 것을 기대하는 것도 무리다. 민간부문에도 고칠 점이 너무도 많기 때문에 우선 이것들부터 착수하자고 제안한다. 먼저 우리나라 대기업들에게 고언을 드리고 싶다. 30대에 드는 한보와 삼미가 거꾸러지자 지금 세계 주요국의 언론은 무슨 불구경이라도 보는 듯이 이를 대서특필하고 있다. 특히 한국경제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맡아온 것이 한국의 재벌들이라는 이론을 펴오던 사람들까지도 최근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 한국형 재벌의 앞날에 먹구름이 드리웠다고 쓰고 있으며 따라서 한국경제는 이들과 운명을 같이 할 수 밖에 없다고 비약적인 논리를 펴고 있다. 이 논리가 맞던 안맞던 간에 이러한 기사가 세계 뉴스망을 타고 확산될 때 우리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치명적이다. 특히 한국경제에 관심을 갖고 직접투자를 고려하던 해외의 유수한 기업들이 한국 대신 제3국을 고려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선진기술과 새로운 경영기법을 가지고 한국에 들어올 것을 고려하던 외국기업들이 방향전환을 할 때 우리경제의 선진화는 그만큼 타격을 받는 것이다. 따라서 대기업들이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그들의 건전성과 자생능력을 외국에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일이다. 우리나라의 모든 대기업이 쓰러지기 직전에 있다는 식의 해설기사가 나오지 말아야 한다. 지난 3월20일자 영국의 유력지 "파이낸셜타임스"지는 한국에 머물고 있는 한 외국금융인의 말을 인용, 한국재벌들이 판매부진→부재변제불능으로이어지는 위기에 직면해 있어 "매우 불길한"상황에 있다고 쓰고 있다. 만일 건정성, 자생능력을 홍보할 자신이 없다면 스스로 몸집을 줄이고 경영개선에 박차를 가하는 모습이라도 국내외에 보여줄 일이다. 최근 쌍용그룹이 자동차부문을 외국인에게 팔겠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한 것은 이런 의미에서 오히려 잘한 일이라고 본다. 49%의 지분을 과감히 외국인에게 양도하겠다는 의지는 이제 한국재벌들이 과욕의 탈을 벗고 경영합리화에 나서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여건하에서 대기업들에게 주어진 선택의 폭은 극히 제한적이다. 대기업들이 주력산업으로 안고 있는 전자, 철강, 석유화학, 자동차, 조선등의 국제수요는 앞으로도 당분간 개선되기는 힘들 것이다. 또 환율의 상승추세, 국내금리의 인상추세, 국내금융기관의 경색현상 등도 단시일내에 바뀔 것 같지 않다. 따라서 그동안 벌여 놓았던 업종들중 승산이 없다고 생각되는 것은 과감히 처분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나타나게 될 대기업의 지배구조 문제에 대해서도 결단을 내려야 할 것이다. 첨예한 국제경쟁에서 경영능력이 여간 탁월하지 않고서는 살아남지 못하는 요즘 기업환경인데 시대감각이 없는 사람들이 최고경영자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있는 것은 누가 봐도 옳은 전법이 아니다. 기업의 대정부 규제완화 요구도 그렇다. 규제를 가급적 풀지 않으려는 정부와 이를 풀어달라고 외치는 기업간의 소모성 논쟁을 보노라면 양측에 뿌리 깊은 불신이 자리잡고 있음을 본다. 필자 생각에는 대기업들이 솔선수범을 보이며 먼저 합리적경영을 통한 경쟁력제고에 뼈를 깎는 노력을 보여야 된다고 본다. 이것이 선행된다면 정부의 규제의 수단을 저절로 녹이 슬어 대부분 무용지물이 될 것이다. 아시아지역에서 가장 높은 부채-자산비율(1백51%)을 개선하지 못하면서 우리 대기업들이 오늘의 어려움의 원인을 아무리 다른 데로 전가시킨다 해도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국민은 별로 많지 않을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4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