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섬우화] (98) 제2부 : 썩어가는 꽃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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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내가 사랑할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야. 나는 당신같은 부자이고점잖고 세상을 많이 살아본 남자에게 호감을 느껴요. 나를 얼마만큼이나 좋아하는가, 나에게 사랑에 넘치는 키스를 해봐요" 그녀는 눈을 스르르 감으면서 그의 달콤한 키스를 기다린다. 눈을 지그시 감고 그의 입술을 기다린다. 떨리는 가슴으로 그의 기교있는 달콤한 키스를 기다린다. 그러나 그의 입술은 쉽게 그녀의 창백한 입술에 부벼지지 않는다. 그녀는 한참을 그렇게 기다리다가 눈을 번쩍 뜬다. 너무도 이상해서였다.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해서 였다. 참으로 감동적인 풍경이 그녀의 시야에 들어왔다. 박동배는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고 있었다. 거의 소리를 내어 울면서, 흑흑흑. "돈 크라이 허니" 그녀도 거짓없이 그의 젤을 발라 넘긴 머리를 가슴 가득히 껴안으며 같이 운다. 꿈에서 찾아 헤매던 백만장자를 만났다는 감격이 그녀를 울게 했고 신분이 높고 교양이 있는 천사를 만났다는 것이 박동배 사장을 그만큼 감동하게 한 것이다. 얼마나 쌍스럽고 돈독이 오른 여자들만이 그의 나이와 돈을 농락하다가 갔는가? 그는 눈물을 멈추지 않고 실컷 울고 싶다. 그는 지금 하느님에게 감사하면서 울고 있다. "오, 제인 제인 제인 제인" 그는 그녀를 으스러져라 껴안으면서 철철 울었다. 그동안 젊은 여자들에게 당한 여러 슬프고 억울하고 분했던 기억들이 한데 몰려와서 엉엉 소리치면서 울었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떠돌면서 얼마나 많은 수모와 천대속에서 돈을 벌고 울고 웃으면서 살아왔는가? 또 10년이나 연상인 마누라에게 개같이 충성하면서 이 호텔의 오너 사장으로 성장할 때까지 그는 진정 이 세상에서 남자가 치렀을 가장 비참하고 악랄한 추억은 다 가지고 있다. 마누라가 죽어서 자유로워졌지만 그녀는 전 남편의 자식이 있었던 마누라에게서 이 호텔을 빼앗아 완벽하게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 20여년간을 개처럼 그녀에게 순종하며 살아왔다. 이제 그 개같이 번 돈을 정승같이 쓸 날이 돌아온 것이다. 올것 같지 않던 정승의 날이 온 것이다. "제인, 나는 그대를 백화점 앞에서 본 첫 순간에 갔었어" "알아요. 아까 그 미스터 리에게 들었어요. 그는 우리의 매파에요" "맞아. 중매쟁이를 아주 잘 해줬어. 제인, 그 코트는 마음에 들어?" 이것 당신 부인의 것이지요? 그러나 그녀는 교양있게 입을 다물고 있다. 제인은 자기가 유쾌하기 위해 상대방을 기분좋게 해주는 미덕을 천성적으로 지니고 있다. 부자남자가 젊을 것까지를 바라는 것은 너무 과욕이라고 그녀는 스스로를나무란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4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