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칼럼] 잣대 .. 최기선 <인천광역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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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느다란 나무 막대기는 길이를 재는 잣대뿐 아니라 악동을 훈계하는 매로도 사용돼왔다. 그러나 아이를 때리는 입장에서는 사랑이었으나 맞는 아이는 폭력이나 화풀이로 여길수도 있었을 것이다. 잣대와 저울은 서로 다른 것을 비교할 때 쓰는 도구다. 이것들로 길이나 무게 등 보이는 것은 잴수 있지만 보이지 않는 차이는 잴수가 없다. 진실 우정 사랑 등의 질과 양은 재어지는 것이 아니라 바로 듣는 것이기 때문이다. 양심은 우리에게 누군가 보고 있다고 타일러주는 소리다. 그러므로 진실을 외면하는 사람이 그 소리를 듣기는 불가능한 것이다. 모든 사람이 자기 이득만 노리고 의사결정을 할때 사회전체로는 손실이 야기된다는 죄인의 딜레마가 요즘 세상에 참으로 걸맞는다. 짧은 시차를 두고 청문회에 출두하는 증인들이 두개의 서로 다른 양심을 믿으라고 강요할때 그것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마음은 혼란스럽다. 이렇듯 위장된 양심은 불신과 저항 등 사회적으로 엄청난 손실을 낳게 된다. 정치자금인가 뇌물인가, 행정인가 선심인가, 거짓인가 아닌가는 양심의 소리와 관련돼있으니 당사자의 속을 꿰뚫어보지 않는한 가리기가 어렵다. 우리는 선진국이 3백년에 걸쳐 이룬 성장을 불과 몇십년만에 이룬데서 오는 홍역을 치르고 있다. 민주를 쟁취하기 위한 상처가 아물고,그다음 또하나 넘어야 할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기 위해 고통을 감내하는 것이다. 체질이 바뀔 때는 일시적으로 명현현상이 나타난다고 한다. 혹자는 상태가 더 악화된 것으로 생각하나 의학계에서는 확실한 전조로 여기고 있다. 지금은 우리의 오랜 악습을 개혁하는데 반가운 전조가 되는 명현을 겪는 시간이다. 이 현상은 누구나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허욕과 허세를 부리는 과보와 같은 인물이 다시는 이 땅에 나타나지 않기를 기원하며 거짓이 합리화되지 않는 진정한 사회를 지향하는 공동의 요구와 함께 해야만 한다. 국민들은 투명한 양심의 잣대가 법보다 존중되고 우대받는 사회를 원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4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