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17일자) 정치자금 문제의 겉과 속

김현철씨 구속은 이제 초읽기단계다. 그러나 그의 구속이후 사태진전은 아직 누구도 속단하기 어려운 양상이다. 두 야당은 물론 일반국민들도 92년 대선자금에 대해 강한 의혹을 제기하고 있어 그의 구속으로 모든 것이 매듭지어 질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한보가 도화선이 된 이번 사태의 본질은 두말할 것도 없이 "정치자금"이다. 자연인 김현철씨는 국회의원이나 정당간 부도 아니고, 따라서 그가 받은 돈은 근본적으로 정치자금법상의 정치자금과는 거리가 멀기는 하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들 일반인이 생각하는 통념적인 정치자금, 정치권에 있는 사람들에게 잘 봐 달라고 주는 돈의 범주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온 나라를 혼란으로 몰고온 사건이 정치자금 때문이고, 이대로 갈 경우 올해말 대통령선거와 관련된 정치자금이 똑같은 파문을 몰고올 가능성도 결코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을 우리는 다시한번 되새길 필요가 있다. 바로 그런 점에서 정치권은 물론 시민단체에서도 정치자금관련 제도전반에 대한 폭넓은 논의가 일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16일 자유기업센터와 유권자운동연합공동주최로 전경련에서 열린 "바른 선거문화 정착을 위한 정책토론회"에서는 돈안드는 선거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유권자의식개혁이 선행돼야한다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됐다. 엄청난 정치자금이 소요되는 풍토,그렇기 때문에 더러운 돈의 수수가 정치의 본질인 것 처럼 여겨지게 된데는 유권자들의 책임이 결코 적지않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 타락선거에 동조하지나 이를 방임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부패정치의 공범역활을 하지는 않았는지 반성하는 자 세가 긴요하다는데 우리는 우선 의견을 같이한다. 이른바 정태수리스트에 오른 정치인에서 김현철씨에 이르기까지,이번 사건의 깃털인지 몸체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숱한 이들이 자기의 행동을 합리화하는 주장으로 내세운게 "대가성없는 정치자금"이라는 것이었다. 현행 정치자금법은 정당에 정치자금을 기부하고자 하는 자는 기명으로 선관위에 기탁해야 한다(11조)고만 돼있어 정치인 개인에게 돈을 주는 "형식"에 대해서는 이렇다할 제한이 없다. 이때문에 다른 법률에 저촉되는 증거,즉 대가성이 있는 뇌물이라는 걸 입증하지 못하는한 "5천만원짜리 떡값"도 형사처벌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국회의원들이 자기들의 "편의"에 맞게 법을 만들었다고도 볼 수 있다. 정치자금법의 대폭적인 개정은 바로 이런 측면에서도 당연하다. 정치자금 입출금을 등록된 통장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도록 강제하는 이른바 정치자금실명제를 도입하자는 시민단체들의 주장은 그 현실성에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한도(국회의원당 연간 1억5천만원)초과여부 수입원천등이 전혀 드러나지 않아도 관계없는 현행 정치자금법의 문제점을 적시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정치자금의 "현실"은 단순히 정치자금법에만 원인이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자의적인 행정규제가 얼마든지 가능하게 돼있는 각종제도가 모두 정치권력에 대한 "아부"를 뒷받침하는 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