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주평] SBS 특별공연 '나훈아, 그리고 소록도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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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탄신일인 14일 오후 5시. 전라남도 고흥군 도양읍 녹동항구는 소록도 가는 배를 타기 위한 사람들로 북적댔다. SBS가 민영TV의 날을 기념해 마련한 특별공연 "나훈아, 그리고 소록도의 봄"을 보기 위한 인근지역 주민들의 행렬이었다. 그들 틈에 섞여 녹동항과 소록도만을 오가는 배에 올랐다. 오르는가 싶더니 어느새 건너편 잔교에 가닿았다. 아기사슴 모양을 한 소록도. 좁은 길을 따라 10여분 언덕과 해변을 달려 중앙운동장에 가닿았다. 투명한 공기, 비에 젖은 나무와 꽃들이 눈물겹도록 아름답다. 이 눈부신 땅이 평생 천형을 지고 사는 한센병환자들의 한으로 점철된 곳이라니 믿기지 않았다. 소록도병원 중앙운동장에 몰려든 5천여명의 사람들. 환자와 간호사, 좋은 공연을 보러온 지역주민들이 자연스레 뒤섞여 있다. "평생 살아봐야 나훈아 얼굴이나 구경하겄소" 지방에서 보기 힘든 큰 공연이라 보러 왔다는 장대진씨(44.어업)의 표정은 밝기만 하다. 휠체어에 겨우 얹혀 있다고 해야할 노인환자들이 무대위에서 펼쳐지는 흥겨운 노래에 맞춰 춤을 춘다. 양손의 손가락은 찾아볼 수 없고 일그러진 얼굴에서는 표정조차 읽을 수없지만 그들의 들썩거리는 몸짓을 보며 더없이 즐거워 하고 있음을 느낄수 있었다. 무대에서는 컴퓨터그래픽을 이용, 나훈아가 천사로 변신해 소록도로 찾아온 대목이 끝나고 노래가 흐르고 있었다. 노래 사이사이에는 소록도에 근무중인 간호사의 미니 다큐멘터리와 편지 등이 소개됐다. 나훈아와 SBS 쇼탤런트의 화려한 무대에 이어 국민가수 나훈아씨가 나환자를 부둥켜 안고 "인생은 미완성"을 부르는 대목에서는 모든 사람이 눈시울을 붉혔다. 여기 저기서 훌쩍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무시로" "잡초" "갈무리" 등 나훈아씨의 주옥같은 히트곡이 계속될 때마다 거친 손뼉소리가 어둔 하늘 가득히 울려 퍼졌다. 가랑비는 이내 굵은 빗줄기로 변해갔지만 자리를 뜨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김중자무용단과 함께 꾸민 "북의 제전", 어린이합창단과 출연자 전원이 하나되어 부른 노래 "향수". 이날 소록도에 울려 퍼진 노래는 더이상 환자들의 슬픔만을 대변하지 않았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