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업 '빅뱅'] (3) '소점포의 몰락'..대형업체 '할인폭격'

동대문상권의 제일평화시장에서 아동복 장사를 하던 권광철(30)씨는 지난해가을 문을 연 이웃 대형상가로 가게를 옮겼다. 같은 재래상권이긴 하지만 낙후된 상가보다는 현대식 대형 상가로 손님이 몰릴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월세 1백40만원을 주고 점포 2개를 1년간 임대했으나 손님이 없어 지난달부터 가게를 놀리고 있다. 낙후된 재래시장의 소점포처럼 대형 상가내 소점포도 장사가 안되기는 마찬가지였다. 가게가 놀더라도 월세는 내야 하기 때문에 옷가지를 싸들고 부천 안산 등 수도권 중소도시 아파트촌을 돌며 노점상으로 변신했다. 이같은 권씨의 사례는 오늘날 영세 소형점포들이 놓여 있는 위기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다. 동네 구멍가게, 재래시장의 낙후된 상가 점포, 아파트단지내의 상가점포 등 영세 소매점들이 이웃 대형 점포에 손님을 빼앗겨 밀려나는 모습이 곳곳에서나타나고 있다. 대형 유통업체들과의 가격싸움에 도저히 따라갈수 없기 때문이다. 가격을 으뜸으로 생각하는 소비자들은 하루가 다르게 상품값을 깎아대는 대형 할인점으로 몰려가고 있다. 깍듯한 서비스를 받으며 품위있는 쇼핑을 원하는 사람들은 백화점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동네 구멍가게들의 어려움도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현재 전국의 영세 슈퍼마켓들이 결성한 한국수퍼마켓협동조합 연합회 산하에는 40개 지역조합이 있다. 이중 상당수 조합들이 경영난을 겪고 있다. 서울지역 60개 슈퍼가 결성한 서울중부수퍼마켓협동조합은 자신들이 공동으로 구매한 상품의 판매부진에 따라 최근 부도가 났다. 강원북부(춘천지역)와 강원동부(강릉지역) 조합도 영업부진에 따라 자진 해산키로 했다. 서울남부(봉천관악지역)와 서울동부(강동구지역)조합도 공동구매를 사실상중단, 해체위기에 놓여 있다. 전국 4만여개 소형 슈퍼 연합체인 한국수퍼마켓협동조합 연합회가 대형 할인점의 가격파괴 공세에 대응, 제조업체 직거래와 공동 물류센터 구축에나서고 있는 것은 이같은 위기상황을 반영하는 것이다. 강원도지역 3개 조합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강원남부(원주지역) 조합도 내년 이후를 생각하면 걱정이 태산같다. 신세계 미도파 그랜드 한화유통 등 대형 유통업체들이 부지 확보를 끝내 내년 이후면 백화점과 할인점 문을 잇따라 열기 때문이다. 신도시 상가내 점포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탑마을 S상가. 지난 94년 완공된 지하1층 지상5층짜리 상가건물이다. 현재 1층가게의 임대보증금은 2백50만원정도로 문을 열 당시의 평당 5백만원에서 절반수준으로 떨어졌다. 개점 당시 5백만원을 웃돌던 10평짜리 가게 권리금이 올들어서는 아예 없어졌다. 임대료가 떨어졌지만 아직도 가게의 25%는 비어있다. 이 건물내 S부동산중개소 박모(72)사장은 "올들어 상가점포의 매매와 임대계약을 한건도 성사시키지 못했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오는 9월이 계약기한인 사무실을 내놓고 경기도 광주로 옮길 생각이다. 그는 이 지역에 대기업과 외국 유통업체들이 잇달아 백화점과 할인점을 세우고 있어 상가의 사업전망이 어두울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고래등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격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영세 소매점들이 나름대로 자구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소형 점포의 미래는어둡기만 하다. 한국유통산업연구소는 재래시장과 소형 점포가 전체 소매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지난 95년의 82%에서 오는 2003년에는 67%로 급격히 낮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경쟁력이 취약한 상당수 소형 점포가 경영난으로 문을 닫을 것이란 관측이다. 이 연구소 김동환 과장은 "소형 점포는 입지상 대형 점포를 짓기 힘든 구시가지 지역에만 살아남을 것이며 도심및 주택가 소형 점포는 편의점으로급속히 대체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