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섬우화] (126) 제3부 : 환상의 커플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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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눈 것은 일본에서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 속에서 였다. 그들은 무엇인가 절박하고 불길한 생각을 하면서 많은 대화를 소곤거렸다. 일부러 그들은 일행들과 멀리 떨어진 자리를 잡았고, 민영대는 많은 협조를 해주면서 표면상으로는 지코치를 가장 존중하는 척 해주었다. 지코치는 몰랐지만 영신은 그의 시선이 돌아가는 것만 가지고도 이 교활한 녀석의 본심을 경계하고 신중한 행동을 했다. 사실 그녀에게는 다섯이나 되는 이모가 있었지만 성미가 깐깐한 어머니는 그들과 별로 가까이 지내지 않았다. "지코치, 만약 나하고 잘 연결이 안 될 때는 어머니에게 전해주면 곧장 나에게 연락이 돼요. 이건 어머니의 핸드폰 전화번호야. 나는 친정 식구들과 아래위층에 같이 살고 있고 삐삐 이외의 모든 전화는 거의 동시에 들을 수 있도록 설치되어 있으니까, 서로 비밀을 철저하게 지킬수록 나의 이혼이 빨리 성립될 수 있어" "나 때문에 이혼을 하지는 말아요" 지코치가 침착하게 말했다. 그는 김영신을 사랑하게 되었으므로 자기같이 더러운 과거를 가진 놈때문에 오랜 결혼생활을 청산해서는 너무 미안하다는 소박한 생각을 하는 것이다. 영신이 행복하면 자기는 어깨위에 앉은 독수리처럼 그녀를 지켜주면 되고 가끔 만나서 사랑을 하면 될 것이다. 그녀가 무엇인가 어려운 일로 고통 받는 것은 그가 원하는 바가 아니다. 그는 지금 여자들의 놀이개가 되어주고 돈을 받으면서 즐거워하는 생활이싫다. 스스로를 죽이고 싶도록 싫어졌다. 차라리 김영신 사장에게서 실크사업을 하는 노하우를 배우면서 그녀를 위해 자기의 모든 안일한 삶의 방법을 버리고 싶다. 많은 금은보화가 무슨 소용이 있는가? 사람은 사람같이 살아야 된다. 그는 지금 입이 있으되 가볍게 턱을 놀리고 싶지 않고 서울에 돌아가면 정말 반듯하고 거리낌없는 생활을 하고 싶다. 이번 여행에서 그는 많은 인생을 배웠다. 그 중에서도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 한다는 자기 나름의 큰 철학을 가지고돌아온다. 세상은 가장 상식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교훈이 그것이다. 상식은 가장 우월한 것이라고 김영신은 몇번이나 역설했다. 그렇다. 나는 이제부터 상식대로 반듯하게 살아야겠다. 김영신이라는 좋은 인간적 친구이고 애인이고 누나이고 마누라이기도 한 여자를 만나서 이제부터 그녀의 보호아래 놓인다면 내 인생도 골프코치로서 만족하는 생활을 하더라도 별로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그녀에게 충성을 다 하면 비즈니스도 배울 수 있을 것이고 그러는 동안 더 좋은 일들이 자기의 편이 될 것이다. 지코치는 그녀의 손을 으스러져라 꼭 쥐면서 침묵속에 많은 것을 맹세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