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생활] '화병' .. 우리문화와 관련된 정신의학적 증후군

김도관 2남 2녀를 둔 가정주부 A씨는 속에서 불이 활활나고 무언가 치밀어오르며 가슴이 답답한 증상을 느낀다. 화가 나는 것을 참으려고 하면 목에 덩어리가 콱콱 막히는 느낌이 든다. 그는 사는데 아무런 재미도 느낄수 없으며 울고만 싶고 어디론가 뛰쳐나가고싶은데 갈데가 없다며 하소연해왔다. A씨는 열아홉 젊은 나이에 시집을 가서 사사건건 간섭하는 시어머니와 자기밖에 모르는 시누이들 사이에서 모진 시집살이를 견뎌왔다. 시집살이가 참을만하자 남편은 바람을 피웠고 이때부터 목에 덩어리가 콱콱막히는 느낌을 받았다. 3년전부터는 시어머니가 중풍으로 쓰러져 대소변을 받아내고 있는데 속에서천불이 나고 증상은 더욱 심해졌다. 그는 주위사람들로부터 "화병"일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다며 스스로도 "속이 썩어서 생긴 병"이라고 표현했다. 화병은 우리나라의 문화와 관련된 정신의학적 증후군으로 서양의학의 진단체계로는 우울증 신체화장애 범불안장애 공황장애 공포증 기분부전증 등의 혼합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인구중 4.2%가 이런 증상에 시달리며 중년이후의 여성에게 더욱 많이 발생한다. 사회.경제.교육수준이 낮은 계층에서 많이 발생하며 만성적인 임상경과를 띤다. 고부갈등 부부갈등으로 대변되는 고통스런 결혼생활, 가난, 사회적 좌절에 따른 속상함 억울함 분함 화남 증오 등 특징적인 감정반응이 화병의 발생과깊은 연관이 있다. 그래서 우울 불안 불면 소화장애 두통 신체적통증 등 일반의 신경증적인 증상들이 나타난다. 특징적으로 답답함 열기 입마름 치밀어오름 심장두근거림 한숨 목가슴의 덩어리뭉침 뛰쳐나가고 싶음 등의 증상과 질병행동이 두드러진다. 정신의학에서 화병은 성장기 이후의 외적요인에 의해 발생하며 환자가 어느 정도 의식한다. 불완전하게 억제된 병적인 심신상태가 장기간에 걸쳐 쌓이고 증폭되면서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즉 화병에 대한 불완전한 방어가 신체화되는 것으로 충동적 감정반응과 신체화된 증상이 미분하게 복합된다고 볼수 있다. "한"이 오래전의 경험으로 어느 정도 극복되거나 체념해 잊혀진 비교적과거완료형의 휴화산같은 감정반응이라면 "화병"은 과거뿐만 아니라 현재에도계속되는 괴로운 감정과 경험이 이어지는 것이다. 체념하거나 극복하지 못해 불안정하게 억제된 감정이 더욱 급격한 현재진행형으로 반응하는 것이다. 화병을 일으키는 생활경험을 예로 들면 자식 배우자의 속썩임, 사업실패,승진실패, 좌천, 사기당함, 이웃과의 다툼, 부당한 재판 등 비교적 최근의 생활경험이며 현재도 진행중인 사건이 많다. 억울한 생활사건을 당하면 속상함 분노 걱정 충격 증오 욕구불만 등이 급격히 늘고 허무 외로움 열등감이 남는다. 이로 인해 다시 억울하고 분노.증오하는 감정이 증폭된다. 몇몇 정신과의사들은 화병을 치료하는데 한을 해소하는 방법을 적용할수 있다고 제안한다. "말로 푼다"는 말처럼 감정을 가슴에 쌓아놓기보다 이를 표현해 언로를 터야 한다. 한이 민족고유의 정서고 화병이 한에 기초한 정신질병이라면 이에 합당한 우리고유의 치료법이 개발돼야 할 것 같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6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