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정치와 경제의 건전한 관계 .. 서상록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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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록 한보게이트가 나라의 기초를 흔들어 놓자 "정치와 경제를 분리하자""경제는 경제논리에 맡기자"는 등 정치와 경제를 구조적으로 분리하자는 스테레오타입이 한때 고개를 들었다. 그런가 하면 노동법 재개정에서 경제논리는 정치게임 안에서 다시 굴절되었고 대기업들이 연쇄부도의 소용돌이에 휘말리자 정치는 다시 경제의 자정과정에 손찌검을 하고 있다. 한때 시장경제의 신봉자라고 했던 관료진의 수뇌부가 그들이 입었던 자유시장경제라는 외투를 벗어던지고 간섭의 소매를 걷어붙였다. 경제학은 2백여년의 역사를 갖고 있지만 아직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많은 학문이다. 이론의 큰 줄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경제학은 아직 백가쟁명의 분야이다. 그러나 모든 경제학자들이 동의하고 있는 한가지 명제가 있다. 그것은 "정치와 경제는 상호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경제학은 원래 "정치경제학"이었다. 20세기에 접어들면서 경제학자들은 정치경제학으로부터 "정치" 자를 떼어냈지만 정치와 경제를 연결하는 현실적인 고리는 결코 끊지 못했다. 경제를 흔히 경세제민 또는 경방제세의 약자로 푼다. 이러한 해석은 세상(국민)을 구하고 나라를 경영하는 것을 경제의 목표로 보는 관점에 입각하고 있다. 그렇다면 국정의 목표가 바로 경제가 아닌가. 요즈음 대통령 예비 후보자들간에는 "경제대통령"이란 컨셉트가 유행이다. 그런가 하면 굵직굵직한 정상회담의 기본주제는 모두 경제문제이다. 정치가 바로(경제분석 도구를 사용하여 분석할 수 있는) 경제활동이라고 보는 경제학자도 있다. 자유시장경제는 하나의 "전설적 모형"이 있다. 시장기구는 그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경제활동을 자유방임상태에 맡겨놓으면 자동조절이 되어 최적의 상태를 만들어 낸다는 모형이 그것이다. 시장기구안의 자동 조절장치가 그 유명한 "보이지 않는 손(가격기구)"이다. 자유방임주의자는 보이지 않는 손이 조정하는 자본주의는 완벽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케인스는 자본주의가 완벽하다고 보지 않았으며 정부가 개입하여 그 약점을 보완해주어야 한다고 보았다. 정부의 개입은 당연히 "규제"를 낳는다. 정부가 개입-규제하는 자본주의가 혼합경제체제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혼합경제체제는 여러가지 구조적 모순을 드러내고 있다. 천재 경제학자 케인스는 이러한 구조적 모순에 대해 아무런 경고도 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어떤 경제학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만일 케인스가 정부개입의 구조적 모순을 전혀 몰랐었다면 그는 정치적으로 순진했다 할 것이고, 알고도 모른척 했다면 분명히 부도덕했다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정부의 개입과 규제는 어떤 모순을 낳을까. 자본주의 체제에는 기업 협회 노동조합 등 각종 특수 이익집단들이 있다. 이들은 모두 규제를 싫어한다. 그 대표가 기업이다. 기업은 규제를 가장 싫어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규제는 존재한다. 이제 기업은 규제의 그물망을 뚫고 나오려 한다. 왜냐하면 규제라는 망을 뚫고 나오는 자만이 남들이 못누리는 독점적 특혜(경제적지대)를 향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규제를 뚫으려고 정치가와 관료들에게 로비한다. 그들은 돈으로 정치가들과 관료들을 "포획"한다. 이것이 "규제의 포획이론"이다. 규제받는 자가 규제하는 자를 포획하여 역이용한다. 그래서 어떤 경제학자는 이렇게 빈정댄다. "기업들은 규제를 즐길 수도 있다. 규제하는 자들이야 말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이다. 이들을 돈으로 포획하면 몇배의 돈이 쏟아진다" 또한 다른 경제학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죽어라고 공장을 돌리는 것보다 국회주변에서 어슬렁거리는 편이 훨씬 이득이다. 많은 기업(특수이익집단)에 있어 국회는 돈이 있는 곳이다. 강도는 은행주변을 배회하고 기업가는 국회주변을 배회한다" 필자의 견해로는 문제해결의 실마리는 정치가가 쥐고 있는 것 같고, 문제는규제속에 있는 것 같다. 혼합경제에서 기업가들이 역이용하는 규제를 완전히 철폐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규제를 최소화할 수는 있다. 부패는 분명히 정부간섭의 실패이며 정부규제의 실패이다. 규제가 커지면 부패의 단위도 커진다. 관료들이 최소한의 규제만을 행사할 때 부패는 최소화 된다. 정치가는 경제인이 역이용하는 규제를 가능한 한 줄여야 한다. 정치와 경제의 건전한 관계는 "규제의 최소화"에서만 정립된다. 그리고 규제의 최소화는 정부의 최소화라는 바탕위에서만 가능하다. 정부의 최소화는 구체적으로는 관료의 수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관료는 그 속성이 규제적이므로 관료의 숫자와 규제는 비례한다. 지금 재계에서는 관료의 수를 현재의 10분의1 규모로 줄여야 한다는 극단적인 제안을 내놓고 있다. 이제는 정계에서 이에 대응하는 구체적인 안을 내놓아야 한다. 대선 주자들의 제1의 정책목표가 작은 정부에 대한 공약이어야 한다는 것은 더이상 강조할 필요가 없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6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