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치구의 중소기업 이야기] (11) '한우물'

60년대초 대구근교 한 시골마을에 이른바 중소기업이 딱 3개 있었다. 첫째가 버스정류소를 겸한 잡화가게, 둘째 정미소, 세째는 양조장이었다. 이들 세 중소기업이 30여년이 지난 지금 어떻게 변했을까. 잡화가게주인은 버스정류장을 겸한 연유로 운수업에 뛰어들어 대구에서는 내로라하는 버스회사사장이 됐다. 정미소집 아들은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이를 처분하고 서울로 올라와 지금 구로동에서 중견 전자부품업체를 가동중이다. 이에 비해 양조장은 사정이 좀달랐다. 양조장을 창업한 할아버지가 이 술도가만큼은 절대 팔아먹지 말고 자손 대대로 이어가라고 손자에게 유언을 했다. 당시 양조장은 면내에서 한곳뿐인 독점체제였다. 그때 이 양조장을 팔면 대구에 큰집 열채를 살수 있을 거란 소문이 나돌 정도로 장사가 잘됐다. 양조장집손자는 할아버지 말씀대로 이를 결코 처분하지 않고 버텼다. 그러나 금복주 진로 OB맥주 하이트의 공략에 이어 이젠 시골에서조차 양주를 마시는 상황에 이르자 막걸리양조장은 스스로 문을 닫지 않을 수없는상황에 부딪치게 됐다. 이 양조장은 지난해 집열채는 켜녕 전세방값에 불과한3천만원에 팔렸다는 소문을 들었다. 우리는 흔히 중소기업은 한우물을 파야 한다는 얘기를 서슴없이 한다. 선진국과 달리 대를 이어가는 기업이 없다고 탓한다. 그러나 한우물도 정말 합당한 품목일때라야 고집해야 한다. 정미소만을 계속고집하는 건 무리다. 지금의 삼성그룹도 경남 의령의 작은 정미소에서 출발했다. 한평생 오직 판유리만 고집해온 한국유리의 최태섭회장도 젊었을 땐 정미소사장이었다. 지난 56년 11월 국내에서 처음으로 피아노를 생산, 지금까지피아노만 만드는 영창악기의 김재섭회장도 정미소집 아들이었다. 4대째 인쇄업체를 유지하는 보진재. 정밀화학분야에서 3대를 이어가는 이화산업. 3평짜리 국화빵집에서 출발해 3대를 이어가는 고려당. 이들처럼 오직 한우물만 고집하는 기업들은 남들보다 기술개발에 몇배의 투자를 더해야 한다. 국화빵만으론 요즘 젊은이들의 입맛을 충족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돌의 성분만으로 건자재를 만들겠다는 각오로 중소기업에서 출발한 주식회사금강을 보자. 지금은 중소기업규모를 넘어섰지만 이 회사는 정말 돌성분만으로 단열재 내장재등 30여가지의 첨단 건자재를 생산한다. 가평에 있는 광산에서돌을 캐내 이를 녹여 판유리에서 첨단 글라스파이버까지 만든다. 이 전문화 정신을 발전시켜나가기 위해 이 회사는 돌성분의 기술첨단화에 엄청난 투자를 한다. 용인에 있는 금강중앙연구소에선 박사를 포함한 6백여명의 연구원들이 돌연구에 밤을 지샌다. 바로 이같은 전문화 정신이야말로 국내산업의 주춧돌을 튼튼하게 해준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6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