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 US오픈 현장리포트] 테리 노, '골프드림 영글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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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를 꺽은 최후의 선수 "그는 아마추어 타이거 우즈를 꺽은 최후의 선수로 기억될 것이다" 이는 이번 US오픈 "선수안내책자"에서 테리 노(19, 한국명 노우성,캘리포니아 롱비치주립대 1년)를 설명한 귀절이다. 그는 지난해 8월초 미시건주에서 벌어진 96웨스턴아마추어골프대회 4강전(매치플레이)에서 당시 아마추어였던 타이거 우즈를 20번째홀(연장 두번째홀)버디로 물리친 바 있다. 그 한달후 프로로 전향한 우즈로서는 그때가 아마추어신분으로 마지막 패배였다는 것. 현재 테리 노와 우즈는 비교자체가 힘들다. 또 "테리 노가 이겼다"는 것도 "우즈만큼 잘 친다"는 의미로는 볼 수 없다. 그러나 테리 노 본인의 가슴속엔 "불과 10개월전의 우즈 격파"가 큰 자신감으로 자리잡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단지 골프때문에 건넜다 테리 노는 미 주니어최고대회인 94USGA주니어아마대회에서 우승했었다. 바로 그 자격으로 이번 대회에는 최종예선전에 곧바로 출전, 3언더파 141타(68.73)를 쳐 출전권을 획득한 것. 그의 스토리는 "골프만을 위한 전 가족의 헌신"을 상징한다. 초등학교 5학년(인천 효열)때 골프를 시작한 그는 92년 한국주니어골프선수권대회 중등부 개인전(충주CC)에서 첫 전국제패의 꿈을 이뤘다. 가족이 미국으로 이민 온 것은 지난 93년. 미국행의 이유는 전적으로 "테리 노의 골프" 때문이었다. "한국은 선수로서의 성장 환경이 극히 제한적이다. 아들을 선수로 키우기로 작정 했다면 무대 크고 환경이 좋은 미국으로 건너가야 하지 않는가" 그의 부친 노형석씨(50)는 단지 그 이유만으로 이민을 결심했다고. 구력 20년이 넘는 노형석씨는 "그린윙" 골프화를 만드는 (주)우창특수소재를 경영하는 등 원래 골프쪽과 연관이 있었다. 커트오프는 생각 안한다 11일 연습 그린에서 만난 테리 노는 아직 애티가 남아있는 소년의 얼굴이었다. "커트오프를 염두에 두면 프레셔가 오기 때문에 생각 안해요. 그저 한샷 한샷에 최선을 다할 뿐이죠. 코스가 길고 세팅이 어렵지만 USGA대회에 여러번 출전 했었기 때문에 해 볼만 해요. 티샷은 드라이버와 스푼을 절반 정도씩 사용할 겁니다" 테리 노의 미 PGA투어 경험은 지난 봄 LA닛산오픈에서의 1-2라운드 153타(71-82)가 유일하다. 당시의 11타 차이는 1라운드후 손가락이 문에 찍히는 부상 때문이라고. 닛산오픈에서 테리 노의 평균 드라이브 거리는 278야드 였다고 한다. 어떻든 이번대회에서 그의 객관적 위치는 총 7천13명의 지역예선 응모자중 콩그레셔널을 밟은 87명중 한 명이자, 단 5명(당초 6명으로 발표됐으나 그중 한명이 대회직전 프로로 구분됐다)에 불과한 아마추어중 한 명. 사실 그것만으로도 대단하다. 그러나 같은 한국인 입장에선 "커트오프 통과"가 아무래도 절실한 희망이 된다. 욕심인지 모르지만 그가 커트오프를 통과하면 "우즈이후의 최대 뉴스"가 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6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