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거일 목요시평] 박정희 향수 .. <소설가>

근간에 1960년대의 우리 사회를 상징했던 사람 둘이 죽었다. 한 사람은 김기수씨다. 1966년 여름에 그가 주니어 미들급 세계 선수권을 차지했을 때, 우리 시민들은 모두 환호했었다. 그때 우리가 느꼈던 기쁨과 자랑은 요즈음 젊은이들은 상상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권투는 대단한 것이 아니고 사회적 풍요나 원숙과도 별 관계가 없다. 세계적 명성을 얻은 우리 시민들도 많아졌다. 그러나 그때 우리는 아주 가난했고 자신과 희망을 많이 지니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 가운데 한 사람이 어떤 분야에서 세계 제일이 됐다는 사실이 퍽이나 흐뭇했고 우리의 자신과 희망도 적잖이 커졌다. 다른 한 사람은 박재삼씨다. 삶이 그리도 험했으므로, 우리 감정에선 슬픔이 컸다. 문학 작품들은 대부분 슬픈 얘기들을 했고 비평가들은 한이 우리 민족의 중요한 감성적 특질이라고까지 했다. 관객들을 울리는 것은 영화의 성공을 보장했고 광고들은 손수건을 여러장 가져오라고 충고했다. 그런 정서를 가장 잘 나타낸 시인이 박씨였다. 한 이십 몇년전 사업 실패한 울 아버지 상을 하고 이 강산에 진달래꽃 피었다. 1962년 겨울에 나온 시집"춘향이 마음"에 실린 "진달래꽃"의 첫련이다. 한 세대가 훨씬 지난 지금도 거기 밴 슬픔은 얼마나 절절한가. 안 어기고 돌아오는 어지러운 봄을 두고 잎잎이 말못하고 속속들이 병들어 울 아버진 애터지고 진달래꽃 피던가. 일본 동경 갔다가 못살고선 돌아와 파버리지도 못한 민적에 가슴 찢던 이 강산에 진달래꽃 피었다 처지가 어렵고 소원이 간절했으므로, 목표와 갈 길은 오히려 또렷했다. 그래서 우리는 일했다. 허리때 졸라매고 지친 몸 추스리면서 열악한 작업 환경에서 힘든 일을 해서 남동생들을 대학까지 가르친 여공들의 얘기는 그 시절을 상징하는 설화가 아닌가. 그리고 우리는 그 목표를 이루었다. 아니, 넘어섰다. 이제 우리가 두려워 하는 것은 배고픔이 아니라 비만이다. 자연히 우리는 그 때를 향수에 가까운 즐거움과 자랑으로 회상한다. 이겨낸 어려움들을 회상하는 것보다 더 큰 즐거움이 있겠는가. 지금 우리 사회에 퍼져 있는 "박정희 향수"의 밑에는 그런 사정이 자리잡고 있다. 우리가 잘 살기 위해 땀을 흘리고 잠을 줄일 때, 그는 우리의 정치 지도자였고 우리 마을에서 그의 모습은 우리의 성공적 노력과 연상되게 마련이다. 그래서 박대통령에 대한 향수가 일시적 현상이라고 보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비록 김영삼 대통령의 실정이 그것을 크게 만들었지만. 따라서 "박정희 향수"가 우리 사회의 정치적 과정에, 특히 정치 지도자를 뽑는 일에, 나쁜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하는 일은 언뜻 생각하기보다 중요하다. 비록 경제발전을 이룬 지도자로 높이 평가돼야 하지만, 그는 우리 사회에 크고 오래 간 해악들을 끼친 압제자였다는 사실을 가리키는 것만은 아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그의 것과는 상당히 다른 정치 지도력을 필요로 한다. 그가 활약한 때부터 겨우 한 세대가 지났지만, 지금 우리 사회는 그때와는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원숙해졌다. 그래서 사회적 과제들의 우선 순위기 다를 뿐 아니라 우선 순위를 결정하고 집행하는 과정까지도 사뭇 다르다. 실은 모든 시민들이 뜻을 같이 하는 목표도 나오기 어렵다. 가난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1960년대의 소망처럼 또렷하고 간절한 소망이 1990년대에 있을 수는 없다. 김대통령이 최근 겪고 있는 어려움들은 그 사실을 잘 보여준다. 그는 박대통령에 대항하면서 정치 지도자로 자라났다. 그 과정에서 그는 박대통령으로부터 많은 것들을 배웠다. 사람은 자신의 맞수로부터 자신이 의식하는 것보다는 훨씬 많은 것들을 배운다. 그래서 오랜 맞수들은 서로 닮게 된다. 나이 든 부부가 서로 닮듯이. 자신과 우리 사회에 불행하게도, 집권한 뒤, 그는 자신이 박대통령과는 크게 다른 처지에 있음을 깨닫지 못했다. 잘게 나뉘어진 사회에선, 경제가 "소품목 대량생산"에서 "다품목 소량생산"으로 바뀐 것처럼, 정치도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다양한 계층들의 요구들을 채어줄 실질적 조치들을 내놓아야 한다는 것을 그는 끝내 깨닫지 못했다. "박정희 향수"는 우리에게 진지한 성찰을 요구한다. 우리 자신의 욕망과 계획에 대해서, 그리고 우리 사회의 구조와 갈 길에 대해서. 무엇보다도,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정치 지도력에 대해서. (한국경제신문 1997년 6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