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민생 외면한 국회 .. 김형수 <정치부장>

"정치인들은 요즘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모르겠습니다. 신문이나 시사주간지를 읽을 때 아예 대통령후보경선관련 기사는 보지 않습니다. 누구인가가 후보가 될테고 그때나 가서 표를 던질 대상을 생각해볼 작정입니다" 최근에 만난 한 기업인이 요즘 정치판에서 벌어지고 있는 소위 용들의 싸움을 평가한 말이다. "다음번 총선때까지 꼭 기억해두었다가 낙선시켜야 합니다. 기업들의 도산이 줄을 잇고 자금난을 못견더 자살하는 중소기업사장이 속출하는 판에 선량이라는 사람들이 하는 일이라고는 TK원조니 민주계원조니하면서 패거리를 만들고 줄서기나 하고 있으니 되겠습니까. 임시국회소집을 못하는 이유가 정치제도개선특위위원의 여야비율때문이라는게 말이 됩니까" 중소기업체의 사장이 오늘의 정치판을 비난하면서 내뱉은 말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오늘 우리들의 정당이 갖고 있는 유일한 관심사는 집권이다. 대권이라는 말이 상징하듯 막강한 권력을 누릴 수 있는 대통령을 만들어 내는 것외에 그들의 목표는 없는 듯하다. 정당의 목적이란 집권하는 것이고 이를 위해서는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해야 한다는 단순논리로 무장한 것이 한국정당의 모습이라는 얘기다. 15대국회 개원때부터 치고 받는 싸움을 전개해 왔던 여야가 올해 들어 6개월 가까운 세월동안 한 일이라고는 파행처리했던 노동법을 개정 통과시킨 것 뿐이다. 갑자기 불거져 나온 한보사건과 관련해 지리한 청문회를 가진 것 정도가 추가될 수 있을까 그외에는 아무것도 한 일이 없다. 오로지 연말의 대선에서 승리하기위해 여당에 집요한 공세를 펼쳐온 것이 야당이고 야당의 공세에 효과적으로 대처해 재집권해야 겠다는 것이 여당의 전략이다. 한국의 대표적 산업중 하나인 반도체산업이 가격폭락으로 고전하고 있고 자동차산업은 재고누적으로 올해들어 벌써 두번씩이나 조업중단조치를취하는 등 경제가 휘청거리고 있지만 선량들은 오불관언이다. 많은 수의 대기업들이 자금난에 허덕이고 도산하는 중소기업이 속출해도 어느 누구하나 본격적으로 경제살리기에 나서지 않는다. 그저 당내에 특위라는 ''빛좋은 개살구''식 기구나 만들고 대변인성명을 내면 그뿐이다.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경제살리기에 나서자면서 대통령의 주도로 만든 여야경제대책회의는 위원들이 가끔 만나서 정부부처의 현안보고 또는 참석자들의 현실진단과 개선방안을 들어보는 것으로 할 일을 다했다는식이다. 경제살리기를 큰 목소리로 외쳐대지만 정작 이를 위해 정부가 이미 제출했거나 제출할 예정인 1백여개의 민생법안을 처리하기위한 임시국회소집은 여야의 입장차이로 언제 이루어질지 모르는 형편이다. 문민정부의 마지막 과제로 여겨지고 있는 정치개혁관련법도 현상태라면 국회의 충실한 심의를 거치기는 틀렸다. 이 모든 것이 여야의 당리당략에서 빚어진 상황이다. 이번 대통령선거부터 적용될 선거법, 정치자금법 등 소위 정치개혁법을 다룰 정치개혁특위구성에서 여야가 한치도 물러나지 않고 맞섬으로써 의원들이 일터인 국회를 휴업상태로 끌고 가고 있는 것이다. 집권이 유일한 관심사인 정당이 선거의 룰을 정할 특위의 구성에서부터 상대방에게 밀려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갖게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수 있다. 그러나 단지 그 이유만으로 입법부의 소임을 내팽겨쳐 나라의 경제운영을 어렵게 할 수 있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국회는 무조건 열려야 한다. 임시국회소집의 최대 걸림돌인 정치개혁특위의 여야의원배정비율은 국회를 열고 난후 논의해도 늦지 않다. 최악의 경우 합의가 안된다면 정기국회에서 처리해도 상관없는 일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당장 하반기 경제운용과 관련한 민생관련법안의 처리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6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