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캐피털리즘 재발견] (2) '해외기업이 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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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경제는 정말 좋다. 올 1.4분기 실적만 보더라도 5.9%의 높은 경제성장률과 4.8%의 낮은 실업률을 기록하고 있다. 독일 프랑스 등 유럽선진국들의 1%대 경제성장률,12%선의 실업률과 비교가안될 정도다. 특히 실업률은 23년만에 최저치라고 한다. 물가상승률은 연율로 따져 1.8%, 이것도 60년대 이후 가장 낮아진 실적이다. 실업률이 5% 밑으로 내려가면 임금인상 압력에 의해 물가가 오를 수 밖에 없다는 기존의 경험과 이론도 통하지 않는다. 그래서 미국 보험업계의 저명한 이코노미스트인 로렌스 큐들로는 "클린턴이케인즈를 KO시켰다"고 말한다. "저인플레와 저실업률의 평화적인 공존은 불가능하다"는 전통적인 케인즈 경제학 이론이 보기 좋게 묵사발됐음을 빗댄 얘기다. 경제학교과서를 다시 써야할 때가 된 모양이다. "클린턴 경제학"의 힘은 국제투자 자금의 흐름도 뒤바꿔 버렸다. 세계의 돈은 지금 미국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지난해 외국기업들이 미국시장에 들고 온 돈은 자그마치 9백50여억달러. 95년의 6백8억달러에 비해 50% 가까이 늘어난 실적이다. 이는 물론 재무부 증권 등 미국의 국채에 투자된 금융자금 등을 제외한 수치다. 뉴욕 증권시장이나 시카고 상품시장 같은데 들어온 핫머니도 빠져 있다. 산업자본 규모만 이렇게 엄청나다. 자국의 거대기업들로부터 조차 외면받았던 미국이라는 나라가 "세계 최고의 유망 투자지역"으로 급부상하면서 세계자본을 끌어들이는 "블랙 홀"이 되고 있다는 증거다. 실제로 지멘스 필립스 NEC 소니 등등 유럽과 일본 등지의 수천여개 기업들이 너나 없이 돈다발을 싸들고 미국시장을 향해 줄달음치고 있다. "왜" 제임스 카펜터 NEC USA사장이 말하는 답은 이렇다. "우리에게 왜 미국에 투자하느냐고 묻는 것은 어리석은 질문이다. 기술동향은 기업에 있어 생명줄과 같은 것이다. 지금 산업기술의 흐름은 미국에서 시작되고 상품화 가능성까지도 미국내에서 검증되기 일쑤다. 미국 내에 사업 텃밭을 일구어 놓지 않으면 생존 자체를 위협받게 돼 있다.글로벌기업에서는 특히" 세계의 산업자본을 가만히 앉아서 꿀꺽 삼키는 아메리캐피털리즘의 힘-. 그 비결을 단순히 "기술적 우위"에서만 찾는다는 것은 아무래도 모자람이 있다. 그런 이유보다는 미국에서 사업하고 싶게 만드는 환경적 유인, 바로 "민간 자율경제 풍토" 때문이리라. "미국은 정부 규제를 거의 다 철폐했다. 있다손 치더라도 주정부에까지 갈 필요가 없다. 카운티(우리나라 군.구에 해당) 정부에 가면 모든게 해결된다"(권오남 워싱턴무역관장). 주미 한국대사관에서 근무하는 관리들의 입에서조차 이런 말이 거침없이 나온다. "다음 대통령은 정부의 관리를 어깨에서 힘을 쭉 빼버릴 수 있는 사람이 뽑혀야 한다. 세계에서 기업하기 가장 좋은 나라를 만들려면 그 수 밖에 없다. 그래야 한국경제가 산다" 이같은 지적은 LG전자 미국공장이 있는 헌츠빌의 메디슨 카운티 정부를 방문했을 때도 확인할 수 있었다. 기자가 만난 버켓경제기획.개발실장의 관심은 오로지 하나. "골드스타같은 한국기업을 우리 카운티에 많이 유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우리 주에서 나는 특산물이나 제품을 한국에 많이 팔려면 또..." "환경적 유인"은 또 있다. AFL-CIO(전 미산업노련)등 노동조합 세력이 약화되면서 외국기업들의 대미투자가 급증하고 있다는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이같은 진단은 미국행 열차에 올라타는 기업중엔 독일업체가 유난히 많다는 점에서 일리가 있다. 독일의 고용관련법은 정리해고(lay-off)가 어렵게 돼 있다지 않은가. 로스앤젤레스에서 만난 한 교포기업인 반문도 마찬가지다. "노사분규의 우려 때문에 한국을 기피하는 외국기업이 많다던데..." 외국기업, 특히 규제가 많고 노사관계가 불안정한 나라의 기업들-. 그들은 지금 정부의 박해(규제)를 피해서, 그리고 경영의 자유(노조로부터의 해방)를 찾아 미국으로 미국으로 달려가고 있다. 21세기 "아메리칸 드림"을 꾸면서 말이다. "이런 미국이 아닌 어느 나라에 기업들이 돈을 걸 수 있겠는가"라는 메릴랜드에 모리시교수의 반문에는 미국인들의 자신감이 짙게 베어 있다. 류화선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