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치구의 중소기업 이야기] (15) '주라기는 끝났다'

거대한 공룡이 늦은 아침 잠에서 깨어났다. 아침사냥감을 찾아 느릿느릿 걸음을 옮겼다. 이때 숲속에 길다란 동물의 꼬리가 하나 보였다. 공룡은 있는 힘을 다해 그 꼬리를 물어뜯었다. 근데 이게 왠일인가. 공룡의 꼬리부분에서 심한 통증이 몰려오는 게 아닌가. 다름 아니라 공룡이 바로 자신의 긴꼬리를 다른 동물의 것으로 착각하고 뜯어먹은 것이다. 우리는 초거대기업의 무기력함을 얘기할 때 공룡의 이런 행동과 자주 비유한다. 지금까진 기업의 규모가 커야 경쟁에서 이기는 이른바 주라기시대였다. 그러나 앞으론 작아야 이기는 시대가 온다. 윤활유생산업체인 한국하우톤이 새로 시작한 경영방식의 성과는 이를 극명하게 나타내준다. 이 회사는 종업원 2백20명의 전형적인 중소기업. 그럼에도 한국하우톤은 이 규모조차 너무 크다고 판단, 회사를 7개로 쪼개버렸다. 남들은 기업을 부풀리기에 바쁜데 이 회사는 거꾸로 나갔다. 지난 96년초 처음 이 제도를 도입한 김광순회장(56)은 다소 불안해했다. 그러나 윤활유란 3백여가지에 이르는 소량다품종이어서 분리전략이 나을 거라고 믿었다. 제 1사업본부는 금속가공유사업을 맡게하고 제2사업본부는 유압작동유사업을 펴게했다. 제3사업본부는 방청코팅제사업을 전개토록하는 등 업종별로 조직을 완전히 분리시켰다. 이들 본부는 각각 예산을 따로 짜게 했다. 그러자 영업실적이 본부별로 달라졌다. 본부별로 사원들의 월급도 차이나기 시작했다. 결국 1개의 법인아래 7개의 사내회사가 생겨나게 된 것. 이 제도를 실시하고 6개월이 지나면서 매출이 엄청나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각본부별 경쟁심이 영업활동을 한껏 부추긴 것. 새바람을 일으킨 이 회사는 공급확충을 위해 충남 아산에 2만평규모의 공장을 새로 짓는다. 세번째공장이다. 한국하우톤은 본래 다국적기업인 미국의 하우톤으로부터 기술을 도입해온 회사. 그러나 사내회사제가 큰 성과를 거두자 미국 하우톤측에서 이 방식을 전수해줄 것을 한국하우톤에 요청해왔다. 얼마전 미국 하우톤은 전세계 35개 현지법인에 이 방식을 채택하도록 지시했다고 한다. 기술은 미국에서 도입했지만 경영은 오히려 전세계로 수출한 셈이 됐다. 이 업체야 말로 앞으로 거대공룡 형태의 기업은 살아남기 어렵다는 것을 일찍 깨달은 케이스. 최근 성남 상대원동에 본사를 둔 동방전자도 회사를 3개의 사업본부로 나누는 사내회사제를 채택했다. 중소기업이면서도 회사를 3개로 나누어 각각 독립채산제를 실시,경쟁력확보에 나섰다. 드디어 주라기는 끝나고 개미군단이 이기는 시대가 서서히 다가 오고 있다. 그저 작다고 설움받고 작다고 약자가 되던 때는 지나갔다. 오히려 작아야 시장변화에 신속히 대응할 수 있고 작아야 수요자의 다양한 성향을 다받아줄 수 있는 시기가 됐다. 개미기업들이여, 힘을내자. 이젠 골리앗기업를 과감히 공략하는 다윗이 되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