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섬우화] (165) 제3부 : 환상의 커플 <65>

"영국의 디즈레일리 수상은 20년 연상의 과부와 결혼해서도 대영제국의 총리까지 했어요. 그리고 해가 지지 않는 나라를 만들고요. 영웅적인 놈들은 그렇게 기발한데 우리나라는 그걸 뛰어넘지 못해요.인습이 고루해서" 영신은 지코치가 너무나 유식하고 상식이 넓은데 아연한다. 사실 디즈레일리 수상의 스토리는 어느 피아니스트 미망인에게 얻어 들은 이야기였다. 그 피아니스트는 지영웅보다 열살이나 연상이었는데 결혼을 원했지만 지코치가 자기 타입이 아닌 여자여서 거절하자 자살소동까지 빚었던 여자였다. 그러나 지금은 서로 소식이 끊긴지 오래 되었다. 사랑은 사랑을 할 때만 소중한 거다. "내가 옆에 있으면 빨리 나을텐데, 정말 달려가고 싶다" "나도 지코치만 옆에 있으면 병상에 있어도 천국일 것 같아 미안해요" "아니, 괜찮아요. 할 수 없지 뭐. 수절상을 받아야지. 하하하" 그는 수절상을 받아야겠다는 말을 진지하게 다시 했다. 유치하지만 그 말의 뉘앙스는 예사롭지 않다. 영신은 갑자기 짜증이 났고 자기의 복 없음이 슬퍼진다. 남들은 별로 심각하게 따지지 않고 결혼해도 궁합이 맞아서 잘들 산다. 자기만 면사포를 계속해서 쓰면서도 나아지는 것이 없다. 첫번째 남자인 조각가는 자유로운 예술혼으로 돌아가기 위해 이혼을 자청, 결혼생활을 쳐부수고 떠났다. 그리고 아주 유명한 조각가가 되어 지금은 파리에서 살고 있다며 다시 돌아와줄 수도 있다고 친구를 통해 건방진 청혼을 해왔다. 그러나 영신은 조루증 환자지만 마음으로는 윤효상을 더 사랑했다. 그러나 지금 그녀는 지영웅 이외의 남자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이 사랑의 진짜 모습이다. "미안해요. 아침마다 내가 모닝콜을 할게요. 그리고 굿나잇 키스도 보내구요" 사랑하면 텔레파시가 통하나보다. 그가 듣고 싶은 말을 그녀가 한다. "상을 안 주어도 괜찮아요. 나는 열심히 골프연습장에서 하루를 보낼 것이니까. 아무 걱정 말고 빨리 나아요" 사실 그는 지금 그 많은 숙녀들의 골프기초를 봐주다 보면 연습장을 떠날 시간이 없다. 밤에도 여덟시까지 스케줄이 짜여 있다. "영신씨, 자기와 한 약속을 잘 지킬테니까 내 걱정은 말고 부디 빨리 나아요. 그래야 당신이 자랑하던 별장에도 가고 그러지요" 그들은 그녀가 이혼을 한후 아파트를 얻어서 동거하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다. 잠만 자고 나오는 생활은 지영웅이 싫다고 했다. 결혼은 못 해도 같이 살고 싶다고 우긴 것은 지영웅이었다. 지영웅은 진정 그녀를 사랑했고 소유하고 싶어 했다. 몇년만이라도.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