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16일자) 협상은 천천히, 대비는 빠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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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전자상거래의 무관세화를 목표로한 인터넷 라운드를 마련하기 위해 보여주고 있는 추진력은 가히 "람보"식 전광석화라는 표현이 어울릴것 같다. 클린턴대통령이 "지구촌 상거래 기본계획"을 발표한 것이 지난 1일인데 어느새 백악관 전자상거래 특별보좌관이 서울에 날아와 인터넷라운드에 앞서 우리 정부와 쌍무협정부터 체결하자고 조르고 있으니 말이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지구촌 전자상거래에 대해 강건너 불구경하듯 해온 우리정부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는지 부랴부랴 대책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너무 서두른 나머서 그런지 정보통신부가 지난 14일 발표한 인터넷 상거래 종합대응방안은 적극적이고 구체적이기 보다는 막연히 일반적인 방향만을 제시한 감이 없지 않다. 정부는 모든 인터넷상거래의 무관세화를 주내용으로 하는 미국의 인터넷라운드 제의에 대해 국내실정을 고려해 당분간 현체제를 유지한다는 원칙을 천명했지만 장기적으로는 무관세화를 위한 국제규범 마련에 적극 참여한다는 입장을 표명함으로써 미국의 제의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미국은 인터넷 라운드의 성사를 위해 지원이 필요한 주요국의 하나로 한국을 지목해 대통령 특사까지 파견했지만 인터넷 상거래에 관한한 후진국이나 다름없는 우리나라로서는 미국의 제의를 무조건 지지하고 나설 입장은 아니라고 본다. 그러나 전자상거래가 거스를 수 없는 추세로 다가오고 있는 이상 근본적인 대비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할 때다. 무엇보다도 인터넷 상거래를 위한 선행투자가 없는 우리로서는 미국과의 쌍무협상보다 세계무역기구(WTO)내에서의 다자간협상에 비중을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미국은 2000년까지 다자간협정을 통해 인터넷 자유무역지대를 실현한다는 계획이지만 이에 앞서 한국 등 주요국들과는 앞으로 1년안에 디지털 서명,저작권및 사생활 보호 등과 관련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쌍무협정을 체결할 방침이라고 한다. 그러나 인터넷 상거래에 관해서는 개도국은 물론 유럽에서조차 미국을 견제하는 목소리가 높은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서둘러 쌍무협상에 응하기보다 우리와 처지가 비슷한 나라들과 연대하여 다자협정의 테두리내에서 실리를 추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또 인터넷 상거래에서도 시장원리에 입각한 민간자율체제가 최대한 존중돼야 하며 이같은 원칙은 정부가 마련키로 한 전자상거래기본법에 명시돼야 한다. 다만 우리의 특수한 문화환경을 고려,통상마찰을 일으키지 않는 범위내에서 인터넷 내용물에 대한 최소한의 규제는 있어야 할 것이다. 인터넷무역이 "새롭고 미국적인 것"이라 하여 두려움을 가질 필요는 없다. 싫든 좋든 인터넷무역은 21세기의 새로운 무역패턴으로 자리잡게될 것이 확실하다. 우리로서는 인터넷무역협상을 서두를 이유가 없지만 준비만은 빠르고 철저하게 해야 한다. 모든 것은 우리의 내부역량에 달려있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