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 법률] '전세계약 유의점'..중개인과 확인서 작성해야

중개업자의 말만 믿고 부동산을 사거나 빌렸다가 뜻하지 않은 손해를 입은경우 중개업자에게 그 책임을 물릴수 있을까. 김모씨는 지난 94년 부동산 중개인인 황모씨의 알선으로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있는 5층건물의 방 두칸을 보증금 3천5백만원을 주고 임대하는 내용의 전세계약을 체결했다. 김씨는 그러나 "안전한 건물"이라는 황씨의 말만 믿고 등기부등본을 확인하지 않았다. 김씨가 이 건물에 10억원이상의 근저당이 설정됐다는 사실을 안 것은 이로부터 1년여 뒤. 채권은행이 이 건물에 대한 가압류사실을 통보해 온 것이다. 집주인은 이미 잠적한 후였고 전세보증금을 날리 처지에 놓인 김씨는 결국 계약 당시 중개를 맡았던 황씨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김씨는 계약 당시 황씨가 근저당이 설정된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고 아무 문제가 없는 건물이라고 소개해 생긴 일인만큼 황씨에게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더구나 황씨가 중개를 맡으면서 등기부등본을 제대로 보여주지 않아 전세대금을 받아낼 길이 막막하다고 호소했다. 김씨는 전세보증금을 되돌려 받을수 있을까. 사건을 맡은 서울고법 민사9부(재판장 김명길 부장판사)는 "황씨에게 부동산등기부등본을 보여줄 의무는 없다"며 원심을 깨고 원고패소판결을 내렸다. 중개인을 통해 부동산 계약을 체결할 경우 부동산 중개업법상 중개인과 사자사이에 반드시 작성해야 하는 중개대상물 확인서를 김씨가 빠뜨렸다는 것. 계약 당시 중개인이 작성하는 이 확인서에는 등기부 뿐만 아니라 저당권여부 등 부동산에 대한 모든 내용이 세밀히 기재된다. 이 확인서는 등기부 확인을 하지 않아 발생하는 모든 피해를 감수하겠다는 중개인의 각서인 셈이다. 그러나 김씨는 다른 당사자 대부분처럼 확인서를 작성하지 않은 채 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황씨가 세든 건물에 근저당이 설정된 사실을 미리알리지 않았다는 김씨의 주장을 입증할 증거가 없다"며 "당시 약정내용을 증명할 확인서가 없는 상태에서 황씨에게 책임을 지울수 없다"고 밝혔다. 중개인은 의뢰받은 부동산이 안전한지를 조사해 임대인에게 정확히 설명할의무가 있지만 중개인만 믿고 건물에 대한 권리관계를 확인하지 않은 김씨의책임이 더 크다는 것이 재판부가 내린 결론이었다. 김씨의 사정이 억울하기는 하지만 사실관계를 입증할 확인서가 없는 상태에서 패소판결을 내릴 수밖에 없다는 것. 서울고법의 한 판사는 "대개의 부동산 계약에서 당사자들은 등기부등본에만 집착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중개인과 약정 사실을 그대로 기재하는 확인서"라고 말했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