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28일자) 어음 '추방' 바람직은 하지만

어음대신에 수표가 주요 결제수단으로 정착될수 있도록 관련제도 개선방안을 강구하겠다는 강만수 재경원차관의 발언은 주목할만 하다. 반드시 지급기일이 돼야 지급의무가 발생한다는 점에서 수표와 차이가 있는 어음은 일본과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독특한 제도다. 발행자 입장에서 보면 수표보다 부담이 덜하기 때문에 납품대금 등의 주된 결제수단이 되고 있지만 문제가 많은 것도 분명하다. 납품대금을 60일 이내에 현금으로 지급하도록 규정한 관련법령에도 불구하고 4, 5개월짜리 어음으로 주기 때문에 중소기업이 멍이 들고 있는 것도 사실이고, 이를 사채시장에서 할인하다보니 지하경제를 부추기는 꼴이 되기도 한다. 두말할 것도 없이 어음은 "추방"할 수만 있다면 추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고, 중요한 거래관행의 변화인만큼 부작용을 부를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예컨대 어음발행금지법을 제정하는 것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같은 법률 또는 행정조치 만능적 사고방식으로는 될 일이 아니다. 수표대신에 어음이 터를 잡게 된데는 5.16직후 최고회의에서 제정한 부정수표단속법이 큰 몫을 했다는 것도 그런 점에서 되새길 필요가 있다. 수표를 부도내면 즉각 금융기관에 의해 고발돼 형사사범이 되지만, 어음은 부도를 내더라도 그렇지 않기 때문에 이래저래 어음발행을 선호하게 됐다고 볼 수 있다. 수표유통을 늘려나가기 위해 수표부도자에 대한 형사처벌을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강차관의 발언도 바로 이런 점을 감안한 것으로 이해할수 있다. 그러나 이런 문제는 극히 지엽적인 것일 뿐이다. 보다 근본적이고 중요한 문제는 통화관리다. 어음은 현실적으로 중요한 결제 수단이지만 통화 총통화 등 어떠한 범주의 유동성에도 포함되지 않는 특성을 갖는다. 유동성공급에 변화가 없는 가운데 만약 어느날 갑자기 어음이 없어진다면 경제가 대혼란에 직면할 것은 불을 보듯 명확하다. 그러나 어음을 없애기 위해 어느 정도 유동성공급을 늘려야 하는지는 추정하기 조차 어렵다. 성급하게 어음을 없애려 들다간 자칫 뿔을 바로잡으려다 소를 죽이는 꼴이 될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바로 그래서다. 거래관행은 문화적 토양에 따라 나라마다 차이가 있게 마련이고 바꾸기도 결코 용이하지 않다. 외국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은행보증수표가 고액 화폐구실을 하고 있다는 점, 가계수표는 당초 예상과는 달리 거의 제기능을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런 단면을 읽을수 있다. 우리는 어음을 추방하려는 재경원방침에 결코 반대하지 않는다. 아니 열렬히 찬성한다. 그 필요성을 정말 절실하게 느낀다. 그렇기 때문에 성급하지 말자고 충고하고자 한다. 장기간에 걸친 치밀하고 다각적인 준비를 지금부터 차근차근히 해나가길 바란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