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섬우화] (178) 제4부 : 미지공들의 섬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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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아가 울먹이면서 돌아가자 지영웅은 자기가 너무 냉정하게 대한 것을 후회했다. 그러나 생전 처음 그는 사랑하는 영신에게 떳떳하게 대할 수 있어서 기분이 아주 날아갈듯 했다. 그는 그렇게 물리적인 남자다. 완벽한 섹스가 안 된 것이 그를 이렇게 떳떳하게 해주는 것이다. 그는 일곱시반에 약속이 되어 있는 레이디가 누구인지도 챙겨보지 않고 연습장으로 성큼 들어선다. 아뿔싸, 거기에는 권옥경이가 당당하게 서 있는게 아닌가? 권옥경은 언제나 그렇게 당당하고 쾌활한 여자였다. 아디다스의 연습복이 돋보이는 멋쟁이, 그녀는 언제나 신선하다. "놀랐지? 삐삐 아무리 쳐도 대답이 없잖아. 그래서 이렇게 습격한 거야.자기 왜 어젯밤 못 잤어? 눈이 부었는데?" "오랜만이오, 누님" 비엠더블류를 준 문제의 여주인이 드디어 나타난 것이다. "지난 달에는 해외여행 다녀왔다면서? 여기 배사장이 그러더군. 얼굴도 타고. 애인이 생겼나봐?" 그녀는 꿰뚫는 시선으로 미소한다. 지영웅은 입을 꾹 다물고 골프채를 한번 휘둘러본다. "골프 연습하러 온 것은 아닌것 같군요" 지코치가 생경스럽게 군다. "지코치, 자기 애인 생겼어?" "그래 보입니까?" "골프투어 같이 갔지?"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맞히시나?" 지코치가 약간 냉소적으로 나온다. 권옥경은 그가 잘 난 체를 하는 것 같아서 비위가 틀렸다. 언젠가 그가 골프투어에 데려가 달라고 했을 때 권옥경이 거절한 적이 있었다. "오늘 몇시쯤 시간낼 수 있어?" "나 같은 것 잊으신 줄 알았는데, 새삼스레 나타나셨네요 여사님" 지영웅의 태도가 영 그녀의 자존심을 건드린다. 뭘 믿고 비엠더블류 700시리즈를 선사한 권옥경이를 마다하는 거야. 그녀는 언제나 건방졌다. 그에게는 그 건방진 태도마저도 좋게 보인 적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그는 도저히 영신이 같이 마음에 드는 여자를 두고 다른 여자와 러브메이킹을 할 수 없다. 사랑 자체를 안 하면서 무슨 육체적 행위를 한단 말인가? 그는 이제 다시는 돈을 위해서 몸을 파는 짓은 안 하리라고 결심하지 않았는가? 권옥경이가 기분상해 하면서, "지나간 날의 사랑을 잊은 것이라면 나도 이제 다른 애인을 사귀어야겠군요 코치님" 그렇게 말하면 그가 무서워할 것이라고 트릭을 쓴 것이다. 그러나 이제 이남자는 끄떡도 않는다. "오늘 나하고 약속해 줄 수 없다구?"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