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진단 '지방경제'] (9) '구미공단 "암운"'

경북경제의 대동맥중의 하나인 구미공단. LG 삼성등 대기업들이 많아 비교적 불경기의 한파를 덜타는 곳이다. 하지만 이것은 작년까지의 얘기였다. 올들어서는 사정이 급변했다. 내수와 수출이 다같이 위축되는 가운데 한보 진로 기아등의 파문이 밀어닥친 탓이다. 물론 구미지역은 기아협력사가 없어 직접적인 피해는 없다. 그러나 신용불안에 대한 공포감이 확산되면서 기업자금조달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재용 대동은행 구미지점장은 "한보 기아 등 대형사건이후 구미지역에는 기업의 양극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고 말한다. LG와 삼성등의 대기업 협력업체는 그런대로 근근히 버틸 수 있지만 그렇지못한 회사들은 막다른 골목에 몰려있는 처지다. 다른 지방과 마찬가지로 진성어음조차 할인이 않되기 때문이다. 대기업의 경우도 최근 경영상태가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 잇단 부도사태로 경기가 꽁꽁얼어붙고 소비와 시설투자수요가 격감하고 있다. 매출증가는 고사하고 현상유지만해도 잘 나가는 업체에 속한다. 그만큼 올들어 영업실적이 뒷걸음질치는 업체들이 많다는 증거이다. 그러다보니 각종 대책회의만 늘어나고 있다. 간부들이나 임원들에게 전화를 하면 회의중이라는 이유로 통화를 못해 안달하는 거래선들이 너무나 많다. "대안은 없고 회의는 많으니 2중3중으로 스트레스를 받는다"(L사 김모 부장) 이같은 대기업의 어려움은 중소기업에게 또다른 형태로 전가되고 있다. 협력업체라는 유대가 점점희박해지고 있는 것이다. 일부대기업들은 거래선을 자주바꾸고 있을뿐아니라 무조건 단가를 인하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물론 대금결제기간도 길어지고 있다. 일부업체들은 9개월짜리 어음을 주기도 한다. 이로인해 중소기업의 채산성도 매우 나빠지고 있다. 이런 상태가 계속되면 기업체질약화로 총체적인 부실로 이어질수 있다고 중소기업인들은 한결같이 우려하고 있다. 한보 기아 등의 영향으로 구미지역의 경우 지난 5월이후 어음부도율이 0.60%로 전년동기 0.27%보다 2배이상 높아졌다. 최근들어서는 이 수치가 더높아지고 있다. 곽공순 구미상의 조사과장은 "구미공단의 경우 현재의 어려움 보다 앞으로가 더 걱정"이라고 말한다. 국제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경쟁적으로 공장을 해외로 이전하다 보니 이제는외국에서 생산한 제품을 역수입해야 할 처지에 놓여 있다. 현재 구미공단 입주업체중 해외진출 기업은 38개업체로 해외공장수는 84개. LG전자 대우전자등은 중국 베트남 멕시코 등에 20여개의 해외TV공장을가동중이다. 제일모직은 대구공장을 구미로 이전한 후 중국 천진으로 진출했다. 삼성코닝도 독일 멕시코등에 이어 중국에 공장을 착공할 계획이다. 구미의 대기업들사이에 해외이전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D사의 박모부장은 "공장의 해외이전으로 국내 생산량은 자꾸 줄고 마땅한 대체산업도 없으니 결국 감원이나 조업단축밖에 다른 방법이 없지 않느냐"고털어놓았다. 대우전자의 경우 1년만에 7백여명을 감축했고 LG전자 TV공장은 조업단축을실시해 금/토/일요일은 연휴나 마찬가지다. 해외공장의 진출은 부품업체들에게 즉각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오리온 전기,한국전기초자와 같은 브라운관 유리생산업체는 최근 가동률 저하 재고증가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물건이 없어서 못팔 정도로 호경기를 누리고 있는 TFT-LCD의 경우도 근심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지난 95년 1월부터 가동에 들어간 LG전자 LCD공장은 현재 24시간 풀가동 상태. 그러나 당초 예상보다 제품 가격이 크게 떨어져 채산성을 맞추기가 어렵게되자 대대적인 공장증설을 마치고 이달부터 생산규모를 3배로 늘이기로 했다. 그러나 일본 등 경쟁국들이 모두 증설에 나서고 있어 혹시 반도체의 전철을밟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 한마디 ] 박장언 구미공단의 경제는 한마디로 속빈강정이다. 올들어 6월까지 생산과 수출이 20%정도 늘어나고 있으나 속을 들여다 보면덤핑과 저가수출로 몸살을 앓고 있다. 특히 섬유를 중심으로 한 중소기업은 그야말로 기업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치고 있다. 전자 대기업들의 해외생산기지 이전에 따른 공동화와 홍콩시장의 직물수출감소에 따른 냉기류가 공단전체를 뒤덮고 있다. 어려운 시기를 극복하고 재도약의 전기를 마련하기 위해 정부와 관련단체들이 힘을 모아야 한다. 업계가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지원할 것인지에 대해 전면적인재검토가 필요하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