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자동차산업이 나아갈 길 .. 이만복 <아텍인터내셔널>

이만복 십여년전 독일의 자동차를 대표하는 다임러 벤츠사가 창립 1백주년을 맞아 자동차기술 1백년의 역사를 베를린에서 소개할 때의 일이다. 전시장에 진열된 한 터보엔진 모델앞에서 호기심을 갖고 물어보는 어린 아이들에게 그 작동원리와 기본엔진과의 차이를 기술적으로 상세히 설명해 주는 한 중년부인으로부터 독일의 자동차 산업을 받쳐주는 힘의원천이 무엇인지를 깨달으며 작은 전율마저 느낀 적이 있다. 세계 5위의 자동차생산국 진입을 추구하며 지속적인 성장을 누려오던 한국의 자동차산업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자동차수입 전면개방이후 수년내에 나타나리라고 예상했던 지각변동이 벌써 구조조정안의 당위성에 대한 갑론을박과 함께 서서히 표면으로 부상하는 불길한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인구비 자동차 생산대수를 비교해보면 독자적 연구개발 능력을 오랫동안 보유하고 있는 미국과 독일이 15명당 1대 꼴이고, 높은 생산기술을 장점으로 하는 일본이 10명당 1대, 그리고 우리나라는 작년말 현재 6명당 1대로 거의 선진국 수준에 이르렀다. 그들과의 기술격차를 감안할 때 이미 적정한계를 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다만 연구개발 능력과 생산기술을 확보하여 국제 경쟁력을 갖추고 해외 생산거점과 마케팅을 확대한다면 아직 생산증가의 가능성을 기대해 볼수 있겠지만, 이는 단기간에 가능하다거나 정부의 인위적인 구조조정으로 해결될 일은 아니다. 자동차란 수만개의 크고 작은 부품을 조립하여 만드는 완성품이다. 기계 재료에서 전기 전자 등에 이르는 모든 산업 분야의 종합적 기술이 아주 작은 부품하나에 이르기까지 최상의 품질을 가능하게 할 때 비로소 국제 경쟁력을 갖출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큰 재앙을 야기시킬지도 모르는 현재의 불안한 징후를 극복하기 위하여 자동차 생산자와 부품 공급자, 그리고 소비자 모두 각자 현재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기 위해 거울앞에 서야 할 때다. 80년대 후반부터 급증한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자동차 생산자는 생산위주의 시설확장에 주력해왔다. 소형차에서 대형차에 이르는 전 차종의 생산능력 확보를 위해 필요시마다 외국기술에 의존하여 자신의 특성을 계발함으로써 고유의 철학을 갖추는 시간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국내시장의 순위 확보를 위한 치열한 경쟁은 각 부품의 계열화를 증폭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뿐만 아니라 자동차 생산자와 부품 공급자간의 수직적 획일적 관계는 부품기술 발달의 한계를 자초하여 결국 경쟁력 상실의 결과를 낳게 했다. 또한 부품공급자는 사회적 인식의 영향에 의한 고급인력 확보가 어려운 상황아래서 생산자의 요구에 따라 가능한 한 많은 종류의 부품을 독점공급하기 위해 필요시마다 기술을 도입해야 했다. 이로 인해 각 제품의 연구-개발능력을 키워 독자적 기술을 확보하는 질적 성장보다 양적 팽창을 도모하게 됐다. 또 소비자는 기술에 대한 인식과 관심의 부족으로 각 자동차의 특성을 비교 평가하여 기술결여에 대한 소비자의 목소리를 높이고 생산자의 각성을 촉구할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은 상태이다. 자동차의 수입시장이 전면적으로 개방되면 양담배의 국내시장 잠식률과 비슷하게 외제차가 국내의 도로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약육강식의 원리가 서서히 자동차업계에도 적용되는 냉엄한 현실에서 자동차 생산자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이제까지 타성화된 경쟁의식에서 과감히 탈피해야 한다. 그리하여 세계적으로 불변의 명성을 얻고있는 벤츠사가 연간 1백만대의 자동차 생산으로 독일 최대 기업으로 성장할수 있었듯이 하루속히 각자 고유의 특성과 철학을 개발, 다가오는 상황변화에 만반의 준비를 갖추는 것이 급선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각 생산자들이 앞으로 능력에 맞는 주력 차종을 선정하여 국내및 해외 소비자들에게 5년동안 품질을 보증하는 자동차를 만든다는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20년전 일본의 도요타 자동차가 독일에 수입되었을때 독일의 소비자들은 같은 기간내에 같은 가격으로 신차를 두번 타보는 마음으로 일본차를 구입하였다. 그후 아우토반에서의 고장률이 제일 적은 자동차가 일본차임이 알려짐에 따라 일본차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신뢰를 얻었으며 가격도 독일차와 거의 비슷한 수준에 이르게 되었다. 독일 아우토반에서 5년간 고장이 나지않는 한국 자동차를 만들기 위해 현재의 자동차 생산자와 부품 공급업체가 어떠한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실행해야 할지는 스스로 깨달을수 있으리라. 이제 자동차 생산자들은 각자 새로 개발한 기술및 이에대한 정보를 1년정도의 시간적 차이를 두고 타 회사에 공개하여 기술적 상호협력과 보완이 가능토록 분위기를 조성하여 국제경쟁에 대응해야 한다. 또한 수직적 획일적 관계에 있는 계열 부품회사들을 수평관계로 이동시켜 부품 공유화를 시도해야 한다. 부품개발에 필수적인 설계기술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설계에 소질있는 인재의 조기발굴및 양성이 중요하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의 교육특성상 이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에 생산자및 부품공급자는 상호협력하여 이를 스스로 해결할수 있도록 해야한다. 예컨대 고등학생들을 비롯한 청소년들에게 각 자동차부품의 새로운 아이디어 공모전을 개최하여 재능있는 자들에게는 평생 전문인으로서 교육및 직업종사의 기회를 보장하여 기술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유도한다면 무척 효과적이리라 생각한다. 이러한 전문인들이 각자 자기가 희망하는 분야에서 오랫동안 쌓은 경험과 지식으로 새로운 부품에 대한 연구및 개발을 계속할 때 비로소 생산자들은 부품 공급자들의 능력을 인정하고 존중해주는 새로운 풍토가 조성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자동차 생산자와 부품 공급자들의 노력이 없이는 결국 우리의 자동차 산업은 선진국의 거대한 자동차 회사들에 의해 생존 자체를 위협받는 운명에 놓이게 될지 모른다. 자동차 산업은 종합산업으로서 국가 경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따라서 생산자와 소비자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관심과 모든 관계기관의 공동협력에 의한 자동차 문화가 정착되도록 해야한다. 생산자는 소비자에게 기술에 관한 정확한 지식과 새로운 정보를 교육이나 실습을 통하여 직접 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소비자는 더욱 적극적인 자세로 기술에 대한 관심을 증대시켜 언젠가는 자녀에게 터보엔진의 원리에 대해 설명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면 우리나라의 자동차 산업은 앞으로 닥칠지도 모르는 위기를 기회로 삼는 저력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