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섬우화] (195) 제5부 : 안나푸르나로 가는 길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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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 테이프는 당신을 영창에 보낼 수 있는 진귀한 사랑의 세레나데야,이 여자야" "다시는 전화하지 말았으면 고맙겠어요. 당신 같이 양심도 없는 사람을 오랫동안 남편으로 섬겼던 내가 재수없는 여자였습니다. 상상만 해도 치가 떨리니까" 그녀는 전화를 일방적으로 끊어버린다. 그리고 지금까지 대화한 내용을 녹음한 테이프를 뽑아내 소중한 보석처럼꼭 쥔채 아버지에게 전화를 넣는다. 김치수 회장은 핸드폰으로 영신에게 말한다. "잘 했다. 공갈친 내용이 자세히 녹음되었겠지?" "네. 사무실에 가시거든 곧 비서를 보내주세요. 아버지가 직접 틀어보시고 변호사와 상의하세요" "그래, 나쁜 놈. 이제야 뭘 더 달래는지 알겠다. 양재동 빌딩의 지분이지?" "네. 그것은 윤효상과 결혼한지 일년도 안 되어 지었잖아요? 그러니까 공동의 권리를 가졌다고 할 수 없는 재산이지요" "맞아. 그 녀석이 죽으려고 환장을 했나 보구나. 그냥 당하고 있을 수 만은 없다. 그리고 너를 절대로 영창에 안 보낸다" "아버지, 저는 무서워요. 그 자가 폭력을 휘두르는 꿈을 매일 꾸면서 악몽속에서 잠을 깨곤 해요" "걱정 말아라. 네 뒤엔 내가 있고 나는 임변호사와 다시 연구하려고 오늘 만나기로 되어 있다. 변호사에게 줄 돈이 아까워서 그 놈이 또 트릭을 쓰는거로구나. 법은 잘 활용할 능력이 있는 자의 편이다. 무리한 요구를 안 하면 너의 지분을 다 넘겨주는 것으로 깨끗이 끝내고 싶었는데. 세상물정을 모르는 놈이다" "돈에 눈이 뒤집혔나 봐요" "너를 쇠고랑채우면 나는 미스 리 년의 뱃속을 촬영해 보일테다" "아버지, 너무 지독한 말씀 그만 하세요. 그저 미안할 뿐입니다. 바쁘신 분을 이렇게 너절한 사건으로 괴롭혀드려서 정말 죄송해요" "알고 있으니 다행이다. 그러나 술먹는 일에는 친구요, 궂은 일에는 가족이라는 속담이 있잖니? 너의 일은 나의 일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이 말썽꾸러기" "아버지, 그 치가 갖고 있는 도청 테이프가 무엇인지 정말 궁금해요. 나를 쇠고랑 채울 만큼 대단한 증거가 되는지, 하도 말을 많이 해서 정말짐작도 할 수 없어요" "아가, 너무 걱정 말아라. 나는 부당한 요구를 하는 인간을 그냥 두고만보지 않을 것이다" 김치수는 냉혹하게 말했다. 김치수는 지금 야쿠자를 사서라도 부당한 요구를 못 하도록 혼내주고 싶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나이가 용서 못하는 방법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