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수교 5주년] 중국 성공사례 .. '가파치'

중국투자의 성공비결은 무엇일까. 다른 지역투자때와 마찬가지로 현지인의 마음을 사는 일이다. 이를테면 현지화를 꾀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좋은 제품을 만들수 없다. 합작파트너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다음으로 중국마켓을 공략할 수 있어야 한다. 중국진출의 가장 큰 메리트는 역시 무궁무진한 잠재수요. 단순히 저렴한 인건비만 염두에 두고 중국진출을 추진했다가는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중국 베이징(북경)에 일관생산체제를 갖추고 현지 피혁제품시장을 적극 공략하고 있는 기호상사의 중국투자사례를 분석해 중국진출의 성공요건을 알아본다. "가파치" 상표로 잘 알려진 기호상사가 중국투자를 검토하게 된 것은 지난 92년말부터이다. 국내에서 사업여건이 갈수록 악화돼 돌파구마련이 필요했다. 실제로 기호상사는 회사가 설립된지 20년만인 지난해 처음으로 적자를 기록했다. 세계시장공략만이 살 길이었다. 성상현사장이 중국진출을 결심한 배경은 세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첫째가 중국이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이란 점이다. 다음으로 중국비즈니스에서 성공하면 개발비부담이 적어져 경쟁력을 갖출수있다. 이유는 시장이 커서 매출도 따라서 확대되기 때문. 마지막으로 중국을 통하면 화교상권을 통해 주변 25억인구를 상대로 장사를 할수 있는 이점까지 있다. 성사장은 93년초부터 중국 어느지역에 공장을 세워야 할지 고민했다. 반년동안의 검토끝에 투자유치에 가장 적극적인 베이징에 생산기지를 마련키로 결정했다. 그는 투자허가를 받기 위한 협상과정에서 투자의무비율과 같이 현지시장공략에 걸림돌이 되는 조항은 조정해 줄것을 강하게 요구, 관철시켰다. 예를 들어 중국에는 투자의무비율이란게 있다. 이 비율에 따라 일반적으로 중국에 투자하는 외국기업의 경우 생산품의 70%이상을 수출해야 한다. 성사장은 이 비율을 낮춰줄 것을 중국측에 집요하게 요구했다. 처음에는 중국정부에서 난색을 표했다. 성사장은 그렇다면 투자를 보류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 결과 수출의무비율을 50%로 명문화해 투자허가를 받을 수 있었다. 다음은 경쟁력있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 설비를 갖추고 기술인력을 확보해야했다. 국내 생산환경에 비춰볼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가장 시급히 해결할 문제는 원부자재를 중국 현지에서 조달하는 것이었다. 기호상사가 중국에 4개공장을 차례로 세운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원피를 가공하는 기호제혁유한공사, 버클과 장식류를 생산하는 가파치 오금제품유한공사, 남성용 지갑벨트를 생산하는 가파치 피혁제품유한공사,그리고 여성용 지갑 핸드백 가방을 전문 생산하는 기호피혁제품유한공사를 잇따라 설립했다. 성사장은 진출이후 지금까지 줄잡아 1천만달러(차입금 포함)를 투자했다고 설명했다. 다음은 기술자를 양성해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었다. 중국의 인건비는 아직도 국내의 10분의1수준이지만 수작업이 주종을 이루는경우 생산성은 국내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원피등 자재구입비용,업무효율성 및 부대비용을 종합적으로 따져보면 저인건비의 장점이 상쇄된다는 점을 성사장은 일찍 깨달았다. 성사장은 생산효율을 높이기 위해 인내력을 갖고 기호가 보유한 기술을 8백여명의 노동자들에게 가르쳤다. 그렇게 2년정도를 노력하자 괜찮은 제품이 나오기 시작했다. 노동자들이 애사심을 갖도록 사규를 만들었다. 잦은 이직을 막기 위해 노무관리도 신경썼다. 열심히 근무하는 직원들은 한국연수기회를 자주 제공했다. 사무직원들에게는 기획 재무 회계에 대한 노하우를 전수시켰다. 합작파트너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사업성공의 필수조건. 성사장은 처음부터 지분율에 관계없이 10년내에 경영권을 넘겨 주기로 합작파트너에게 약속했다. 자연스럽게 파트너의 자발적인 협조를 유도해 냈다. 중국에서 생산된 제품의 절반이상은 베이징 상하이(상해) 티안진(천진) 센양(심양) 타이렌(대련) 칭다오(청도) 등 유명 백화점 20여곳에서 팔고있다. 물론 내수판매량의 1백%를 가파치브랜드로 판다. 중국공장의 올 매출은 1천5백만달러로 수지를 맞추는데 그치겠지만 중국의잠재수요에 비춰 볼때 4,5년내 수천억원의 외형을 기록할 수 있을 것으로 성사장은 기대했다. 성사장은 앞으로 2년내 2백여개의 영업점을 낼 계획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