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26일자) 기대에 못미친 안정대책

질질 끌어오던 금융시장 안정대책이 마침내 발표됐다. 주요내용은 부실규모가 크고 대외신인도유지가 어려운 은행에 대해 한은자금을 지원하되 시장금리를 적용하고 부도유예기업에 대한 여신이 자본금의 50%를 넘는 종합금융사들에도 국고자금예치 환매채매입 등을 통해 필요한 최소한의 자금을 지원한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금융기관의 해외차입여건을 개선하기 위해 필요하면 정부가 지급보증을 서줄 예정이며 서업공사의 부실채권 정리기금을 3조5천억원까지늘리기로 했다. 그동안 거론됐던 지원대책이 거의 망라된 셈이다. 우리는 이번 대책발표를 계기로 금융시장이 안정을 되찾기를 바란다. 하지만 상황이 반드시 낙관적이지만은 않다고 본다. 그 이유로 크게 두가지를 들 수 있는데 하나는 금융안정대책이 실기했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정책의 신뢰성이 손상을 입었기 때문이다. 우선 금융안정대책이 제때 나오지 않아 금융시장의 혼란이 악화된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한예로 제일은행에 한은특융을 해주는 문제에 대한 의견대립을 들수있다. 두말할 필요없이 한은특융을 해주는 것이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특융으로 인한 혜택만큼 국민부담이 가중되고 자칫 통화증발에 따른 물가불안심리를 자극할 수 있다. 또한 어디에는 특융을 주고 어디에는 안주냐는 형평성시비도 있을 수 있다. 따라서 개별기업이나 금융기관의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해 한은특융을 동원하자는 주장에 대한 재경원측의 거부간도 이해가 된다. 특히 금융시장이 안정감을 잃으면 돈이 돌지를 않아 멀쩡한 기업까지 부도위기에 몰리기 때문에 안정대책이 제때 나와야 하며 불안감을 잠재우기에충분한 정도의 내용을 담아야 하는데도 지금까지의 정부대응이 그렇지 못했던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이번 대책에서 제일은행 등의 자구계획을 보고 한은 자금의 지원금액및 조건을 결정하기로 한것도 마찬가지다. 한은 특융을 하지 않고도 금융기관의 경영난과 대외신용추락을 막을수 있는대안을 제시하지 못한채 무작정 시장자율에 맡기자며 시간만 보낸 것은 무책임한 자세라고 비난하지 않을수 없다. 또 한가지 지적할 것은 정책의 신뢰성이 손상됐다는 점이다. 부실기업의 연쇄 도산을 막기 위해 나온 부도유예협약이 적용기업에 따라 일관성을 잃고 대출회수를 부추겨 오히려 부도를 촉진하는 등 적지않은 부작용을 보였지만 전혀 보완되지 않았다. 한은특융 등 금융안정대책도 일부의 관측대로 재경원과 한은의 감정대립 때문인지, 아니면 상황판단이 잘못된 탓인지 모르지만 너무 늦었고 내용도 애매한 점이 많다. 금융불안의 직접적인 원인인 기아회생 문제도 감선홍 회장의 사표제출을 둘러싼 공방에서 한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정책원칙과 경제현실을 조화시키는 것은 물론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기아사태 이후의 정부대응은 아무리 생각해도 미진했으며 관련자들은 책임을 면할수 없다고 본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