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 '현실 견디기 - 노예 16' .. 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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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장례 치르고 나니 사글세 보증금 5백만 달랑 남았다. 한때 천석꾼의 외아들이던 아버지 명문대를 졸업하고 늘 막차 타는 사업에만 투자했다. 몽땅 털어먹었다. 늘 소주로 취해 있는, 허공에다 발 딛고 사는 아버지 곧잘 플루트를 불었다. 간신히 대학 졸업하고 간신히 취직했다. 간신히 세상 한 끄트머리에 편입했다. 아버지 닮아 허공에다 발 딛고 있는 아들, 세상 속으로 더 들어가기 겁이 나 사글세 방에서 재즈피아노를 치고 있다. 유럽 신혼여행 계획하고 있다. 다들 땅바닥에다 발내리기 두려웠다. 시집 "유토피아 없이 사는 법"에서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