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5일자) 퇴직금제도의 개선방향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진 근로기준법상의 임금채권 최우선 변제조항의 개정과 관련, 노사관계개혁위가 지난 3일 노.사.공익 대표들을 참석시킨 가운데 공개토론회를 개최함으로써 퇴직금 제도 개선논의가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헌법재판소가 법개정 시한을 연말까지로 못박음에 따라 노개위도 오는 9일최종의견을 조율해 이달 하순까지는 대통령에게 보고할 예정이라고 하니 시간에 쫓겨 개정안 마련작업이 졸속에 흐르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시각도 없지 않다. 그러나 현행 퇴직금제도의 문제점은 공론화만 되지 않았을 뿐이지 막후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거론돼온 터여서 무작정 시간을 끈다고 해서 더 좋은 해결책이 나온다는 보장이 없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퇴직금제도 개선논의는 퇴직금 우선변제 범위를 어느 선으로 할 것이냐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최우선 변제기간을 놓고 재계의 3년안과 노동계의 8년안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물론 헌재의 결정이 "제한없는"퇴직금 우선변제권에 제동을 건 것이기 때문에 새로운 법에서 우선변제 범위를 정하는 일은 소홀히 할수 없다. 그러나 노사가 이 문제에 너무 집착하다보면 퇴직금문제의 본질이 흐려질 우려가 있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우선변제 기간은 지난 4월 공포된 소기업지원특별법과 국제노동기구(ILO)규정을 준거로 하여 형평을 맞추면 될 일이다. 새로운 선진국형 퇴직급여제도의 도입이 불가피한 추세에서 어차피 과도기적으로 시행될 우선변제 범위를 놓고 노사가 힘겨루기에 에너지를 소모한다면 이보다 어리석은 일이 없을 것이다. 정작 중요한 일은 이 기회에 퇴직금제도를 전면 정비해 퇴직급여의 기본취지를 살리는 동시에 실질적인 안전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퇴직급여의 안전성 확보와 관련해 퇴직연금보험제와 퇴직금 중간정산제의 활성화방안이 거론되고 있지만 이 역시 노사간 입장이 달라 합의가 쉽지 않을전망이다. 지난 3월 노동법개정시 도입된 이 제도들은 회사의 형편에 따라 시행할 수도 있고 안해도 되는 임의 제도이다. 그런 것을 노동계가 이번에 의무화를 주장하고 나섰다. 만약 노동계의 주장대로 의무화가 된다면 현재 여건상 기업의 자금난을 가중시킬 것이 뻔하다. 기업마다의 규모나 여건을 고려하지 않은 획일적인 의무화보다는 임의제도로 존속시키되 세제상의 지원등 각종 인센티브를 두어 이 제도의 도입을 활성화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끝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우리나라의 법정 퇴직금제도도 더 이상 후불적 임금의 성격을 갖는, 우리나라 만의 특유한 제도로 남아있기 보다는 사회보장적 성격의 연금화가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그런 시각에서 사회보장체계 전반과 관련돼 있는 국민연금제와 근로기준법상의 퇴직금제를 어떻게 연계시킬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이번 퇴직금관련규정의 개정작업을 계기로 활발해졌으면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