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백석 광복이후 작품 완결판 나와 .. 서정시 등 34편

정지용과 함께 한국서정시의 양대 산맥으로 꼽히는 시인 백석(1912~?)의 작품 34편이 새로 발굴됐다. 문학평론가 김재용(37)씨가 백석의 광복이후 작품을 찾아 완결판 "백석전집" (실천문학사)으로 엮어냈다. 이번 전집에 처음 소개된 백석의 작품은 광복 이후 발표된 시 "제3인공위성" "공무여인숙" 등 13편과 동화시 "개구리네 한솥밥" 등 12편, 평문.정론 7편, 수필 "무지개 뻗치듯 만세교" (37년) "소월과 조선생"(39년) 등 34편이다. 김재용씨는 "87년 시인 이동순씨에 의해 출간된 백석시전집에는 일제때 작품만 들어있어 안타까웠다"며 "백석문학의 진면목을 밝히기 위해 중국과 러시아 자료를 찾아 해방이후 북한에서의 발표작까지를 모두 담았다"고 말했다. 이로써 냉전이데올로기에 가려져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백석의 문학세계가 10년만에 온전한 모습을 드러내게 됐다. 평북정주 태생인 백석은 30년 조선일보 신년현상문예 단편소설 부문에 당선돼 등단했으나 일본 유학에서 돌아온 35년 시 "정주성" 등을 발표하면서 시인으로 더 유명해졌다. 토속성 짙은 아름다운 우리말과 주위에 대한 따뜻한 시선으로 가득한 그의 시는 월북작가 해금조치 이후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다. 김씨의 자료연구에 따르면 그는 만주에서 광복을 맞은뒤 고향 정주로 돌아가 한동안 외국문학 번역에만 몰두하다 56년부터 창작활동을 재개했다. 57년 4월에 펴낸 동화시집 "집게네 네 형제"는 시의 형식을 빌린 실험적 동화. 혁명이나 계급의식보다 휴머니즘 고양의 이미지가 많은 이 작품으로 아동문학 논쟁을 불러일으킨데 이어 백석은 "조선문학"에 게재한 "동화문학의 발전을 위하여" "나의 항의, 나의 제의" 등 평론을 통해 당시 북한 아동문학의 "도식주의 경향"을 비판했다. 이같은 일련의 문제로 58년 숙청당해 국영협동조합 축산반 양치기로 쫓겨나지만 그의 진정한 문학세계는 오히려 이때 빛을 발했다는 것이 김씨의 분석이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농촌에서 공동체적 삶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이를 시로 형상화했다는 것. 59년 발표된 시 "동식당"은 "여우난골족" 등 초기작을 떠올리게 한다. "아이들 명절날처럼 좋아한다/뜨락이 들썩 술래잡기, 숨박꼭질/퇴 위에 재깔대는 소리, 깨득거리는 소리/어른들 잔칫날처럼 흥성거린다/정주문,큰방문 연송 여닫으며 들고 나고/정주에, 큰 방에 웃음이 터진다" 60년에 쓴 시 "전별"도 마찬가지..."어제는 남쪽집 처자의 시집가는 걸/산위 아마밭에서 바래 보냈더니/오늘은 동쪽집 처자의 시집가는 걸/산아래 감자밭둑에 바래 보내누나"로 시작되는 이 작품에는 외딴 마을로 시집가는 처녀를 동네사람들이 넉넉한 마음으로 전송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공동체적 삶을 되찾은 농촌에서 새로운 유토피아를 발견하려던 그의 노력은 그러나 결국 국가사회주의의 벽에 부딪혀 좌절된다. 62년말 북한 전역에 불어닥친 복고주의 비판바람에 의해 된서리를 맞고 창작활동을 중단한 것. 이때부터 백석의 이름은 북한 문학계에서 사라져 버렸다. ---------------------------------------------------------------------- - 이른 봄 골안에 이른 봄을 알린다 하지 말라 푸른 하늘에 비낀 실구름이여, 눈 녹이는 큰길가 버들강아지여, 돌배나무 가지에 자지러진 양진이 소리여. 골안엔 이미 이른 봄이 들었더라 산기슭 부식토 끄는 곡괭이 날에, 개울섶 참버들 찌는 낫자루에, 양지쪽 밭에서 첫운전하는 뜨락또르 소리에.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