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시장경제와 정부의 역할 .. 김중수 <조세연구원장>
입력
수정
20세기 후반기의 국제경제환경은 세계화와 자유화추세, 즉 국가경제의 시장경제체제로의 통합추세로 특징지어지고 있다. 소련 및 동구 사회주의 경제의 붕괴가 시장경제로 통합시키는 기폭제 역할을 하였다. 경제적 의미에서의 국경이 사라지게 만든 정보통신 혁명이 이 추세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기업활동의 활성화를 근간으로 하는 시장경제체제가 이념주의를 바탕으로 한 사회주의보다 우월한 것이 입증되었다. 한편 지금 세계경제 생산량의 30%, 교역량의 40%를 다국적기업이 담당하고 있으며 이 비중은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 우리는 유의해야 한다. 경제효율성 원칙인 자유로운 자원이동의 이점을 십분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다국적기업의 등장은 자국기업과 국익이라는 기존의 개념을 변질시키고 있다. 국내 고용의 창출 등 국가경제발전의 기여도를 척도로 삼을 때 다국적기업이 국익에 더 도움이 될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 기업의 해외활동 비중도 급격히 커지고 있으며 다국적기업의 영향도 커지고 있다. 국내 요인만을 고려하는 내부지향적 정책은 실효를 거두기 어려운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이 이미 창출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시대적 환경변화에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한마디로 시장경제의 제도적 기반구축에 가일층 노력하여야 한다. 무엇이 시장경제인가를 정부와 정치권을 포함한 모든 경제주체가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정부와 정치는 개방화로 수입대체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이들의 영향은 특히 중요하다. 예를 들어 OECD 가입과정에서 우리경제에 대한 가장 큰 비판중의 하나가 기업을 시장에서 거래할 수 있는 상품으로 보지 않는 나라가 어떻게 시장경제를 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우리의 문화적 특성만으로 설명하는 것은 설득력을 갖지 못할뿐 아니라,우리경제의 경쟁력 강화에도 도움이 안된다는 점을 경제주체들은 자각해야 한다. 시장경제의 가장 중요한 원칙은 시장에서의 가격이 경제활동에 대한 보상과처벌기능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누구나 수긍하는 원칙이겠으나 시장기능이 원활히 작동하는 여건조성이 쉽지 않다. 수많은 공급자와 수요자가 존재하여야 완전경쟁이 이루어지게 되는데 이 조건이 충족되기가 어렵다. 선진국들은 시장형성의 문제를 개방화로 해결해왔다. 세계경제를 대상으로 경제운영을 하게 되면 시장원리에 근접한 제도개혁이나 정책수행이 궁극적으로는 자국경제에 유리한 결과를 가져옴을 경제주체들이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경제체제에서 정부의 역할은 무엇인가. 공정한 경제행위여부에 대한 감시자 역할은 물론이고 시장의 여건을 만드는것이다. 시장은 저절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더욱이 요즈음 같이 신국제경제질서가 태동되는 시점에서는 국내의 각종 제도를 국제규범에 맞추어야 한다. 이러한 고유기능 때문에 정부의 역할이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는 견해마저 국제기구에서 제기되고 있다. 새로운 제도나 정책을 성공적으로 정착시키는 전제조건은 일관성을 유지하고 정부의 의지가 확고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떠한 제도개혁도 기존현상을 변화시키기에 이해상충의 문제가 수반되게 마련이다. 단기적으로는 부작용이, 근본적으로는 도덕적 해이와 역선택의 행태도 언제나 발생한다. 예약이 필요하다는 취지에는 누구나 공감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종금사가 기업자금력을 테스트하는 부작용이, 부도가 났을 상황에 비하여 자구노력을 느슨하게 하는 기업의 도덕적 해이현상이,부도처리가 당연한 한계기업이 오히려 혜택받게 되는 역선택 현상도 나타나게된다. 이와같은 예견된 현상에 대한 비판이 정책의 근간을 바꾸는 결과를 초래하여서는 안된다. 이럴 경우 경제주체들은 새로운 제도에 적응하기보다는 이 제도를 바꾸는 데 노력할 것이므로 그 제도가 소기의 성과를 실현할 수 없게 된다. 우리는 과거에 제도개혁을 추진하고자 할 때마다 기득권 세력의 비판때문에개혁이 좌초된 경험을 갖고 있다. 지금의 시기도 예외는 아니라고 생각된다. 정부는 시장경제의 정착을 소명의식을 갖고 접근하여야 한다. 특정집단의 이익 대변이 모든 현실일 수는 없다. 더구나 정책은 현상의 치유와 더불어 경제주체의 미래 행태를 규정짓는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에 정책 일관성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하여도 지나치지 않다. 미국의 루빈 재무장관이나 그린스펀 연준의장도 임기초부터 크게 기여한 것은 아니다. 장기간의 일관된 정책수행으로 경제주체들로부터 신뢰를 쌓게된 것이 성공적 임무수행의 요인이었다. 이제는 정치지도자와 모든 경제주체들이 정책불확실성의 사회적 비용이 얼마나 큰지를 깨닫기를 기대해 본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