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섬우화] (219) 제6부 : 장미섬 풍경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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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옥자는 영치에게 거의 안기다시피 택시에 올라탔다. 귀여운 총각이 그를 자기 집으로 가잰다. 어디 보자꾸나.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다. 네가 지코치만큼 마음에 들지 않아도 그거야 하룻밤 자봐야 알지. 그녀는 생전 처음 배포도 크게 오직 소사장 하나만 믿고 처음 보는 영치를 따라간다. 왜 이 청년은 그녀를 호텔로 안 데리고가고 자기 집으로 가는 걸까? "나를 왜 댓바람에 집으로 데리고 가? 혼자 살아?" 그녀는 자기의 핸드백에 있는 현금과 수표 등을 헤아리면서 의심스레 묻는다. "그럼 호텔로 가요? 호텔비가 아까워서 그래요" "네 마음대로 해. 내 인생은 이미 끝장났으니까" "아줌마 그런 소리 말아요. 나같이 형편없는 놈도 사는데,큰 제과회사 사장님이 그런 말 하면 어떡해요?" "너 내가 제과회사를 하는지, 메리야스회사를 하는지 어떻게 아냐?" "소사장님이 그랬어요. 그러니까 함부로 대하면 안 된다구요. 아줌마는 바람난 유부녀가 아니어서 정말 좋아.나는 유부녀는 싫어해요. 돈을 암만 줘도 안 가" "돈을 벌기가 싫으냐?" "아니 우리들은요, 사실 돈도 벌고 재미도 보거든요. 어린 아가씨들과 놀아봐요. 우리는 그런 것을 시간낭비라고 생각해요. 알도 먹고 꿩도 먹는 일을 해야 이 다음에 큰 차 타고 부자되지요" "돈이 벌리기는 허구?" 영치가 어린아이같이 말해서 백옥자는 웃음이 나온다. "야, 병 걸리면 어쩔려구 여기 이 압구정동 바닥을 헤매니? 어서 고향으로 가. 에이즈에라도 걸리면 너는 황천길이야. 안 그래?" "아줌마 말이 맞아요. 한달전에 고향으로 갔었어요. 이 생활 집어치우기로 하고 마음 독하게 먹고 내려갔는데, 할 일이 있어야죠. 학벌도 없구, 있는 거라고는 네명의 동생과 병든 아버지에,지쳐서 다 늙은 어머니... 나는 집이 싫어서..." 영치는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모를 말을 술술 잘도 엮는다. 소사장에게 그녀에 대한 교육을 미리 받고 나와서 상대하기가 쉽다. 이것이 소사장의 사전 소개였다. 영치는 이제 그만 잡것들을 만나지 말고 백옥자 사장 같은 정해놓은 애인을 잡고 싶다. 영치는 각본대로 치밀하게 움직인다. "아줌마, 나는 아르바이트라서 프로처럼 잘 하진 못 해도 순정은 있어요"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