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신바람 한국'의 조건 .. 김형철 <사회1부장>

"대통령후보자들의 삶의 체험현장이라는 TV프로를 봤나" "보긴 봤지. 그런데 뒷맛이 개운치 않더군" "전체적으로 후보자들의 그런 배역이 어색하게 보이더라구. 어떤 후보자는 안쓰럽기까지 할 정도였어" "반대로 해석하면 대통령후보자들쯤되면 일반시민들의 애환을 잘 모른다는 증거가 아니겠나" "경제는 엉망인데 정치놀음들만 하고 있으니 정말 큰일이네" 추석 귀성열차에서 옆자리의 승객들이 주고 받았던 대화가운데 일부다. 여기서 표몰이를 하기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뛰는 대권 후보자들을 나무랄 생각은 없다. 그것을 연출한 방송사의 상업주의를 탓할 의도도 없다. 정치는 역시 쇼이니까. 그러나 문제는 우리에게는 쇼를 쇼로 보아 넘길만큼 여유가 없다는 사실이다. 수렁에 빠진 경제는 좀처럼 회복될 기미가 없다. 회생은 커녕 갈수록 나빠진다는 걱정소리만 높아간다. 달러화가 강세인데도 수출은 좀처럼 늘지 않는다. 명예퇴직을 비롯한 기업의 감원선풍이 산업계를 강타하고 있다. 그래서 감원노이로제에 걸린 샐러리맨들이 한둘이 아니다. 취업대란이라는 말이 유행어가 될만큼 취직난은 심각하다. 어디 이뿐인가. 대기업들의 잇단 부도후유증으로 신용공황이 확산되고 있다. 시중에 부도설만 나오면 종합금융회사들은 앞다퉈 돈을 회수해 버린다. 어음은 이제 한낱 종이조각에 불과하다. 납품업체들은 현찰내지는 선금거래가 아니면 거래를 기피한다. 수많은 중소기업들이 영업확대보다는 부도막기에 급급하고 있다. 부도에 놀란 일부 자영업자들은 차라리 이민이나 가겠다고 말할 정도다. 그러나 불경기 보다도 더 골칫거리가 있다. 바로 사회조직 구성원간에 불신과 반목의 고리가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가장 단적인 예가 기아문제다. 정부와 기아그룹, 기아그룹과 채권은행단, 삼성과 기아, 자동차업계와 삼성, 정부와 기아협력업체와의 관계는 "불신의 덩어리" 그 자체다. 그야말로 모두가 고개를 외로 꼬거나 돌아앉은 꼴이다. 불신은 반목을 낳는다. "역사의 증언"으로 유명한 프랜시스 후쿠야마박사는 신뢰(TRUST)라는 저서에서 한국을 미국 독일 일본과는 다른 "저신뢰사회"라고 규정했다. 역사적으로 전제군주에 권력이 집중된 탓에 중간계층이 없고 가족을 중심으로한 혈연에 크게 의존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국이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면 글로벌국가로 도약하거나 글로벌기업이 탄생할 수 없다고 진단하고 있다. 사회구성원간의 관계는 일본과 대비되는 점이 정말 많다. 은행과 기업과의 관계만 봐도 그렇다. 일본금융기관들은 경기침체 등으로 기업이 어려울땐 대출선에 더 관대해진다. 돈이 쪼들리는 기업들의 대출금을 조기에 회수, 더 어렵게 만드는 일은 없다. 웬만하면 추가담보도 요구하지 않는다. 소생가능성이 있다면 연체금리를 매기지 않는다. 오히려 이자율을 내려주거나 탕감해주며 추가로 자금지원까지 해준다. 신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반대의 경우가 영국이다. 영국은 아직도 반기업주의 반산업주의 풍조가 강하다. 2차대전후 노조의 입김이 커지고 환경 노동조건 등이 중시된 때문이다. 평등민주사상이 길러졌지만 자본가의 돈벌겠다는 의욕이 꺾이고 말았다. 그래서 많은 기업가들이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 반성에서 대처혁명이 일어났다. 소득세 누진세율이나 법인세도 일본보다 낮췄다. 시티를 중심으로한 빅뱅도 일으켰지만 한번 잃은 "부의 창출" 능력은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다. 산업계와 정부간에는 신뢰가 거의 없다. 추석연휴도 끝나고 경제회생에 온힘을 쏟아야 하는 우리에게는 좋은 타산지석이다. 잃어버린 신바람을 되찾는 일은 시급하다. 그러기위해서는 우선 불신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그것이 정치권을 비롯한 정부가 앞장서 해야할 일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