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강대국의 조건 .. 한동우 <한솔종금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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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학자 다니엘 벨은 탈공업사회를, 앨빈 토플러는 제3의 물결을 예고했다. 피터 드러커도 다소 구체적으로 자본주의 다음시대(포스트 캐피탈리즘)는 생산성개념이 장비 부품 원료에서 사람의 문제로 바뀐다고 했다. 10여년전 일본의 사까이야는 문명사적으로 보다 분명하게 지가혁명을부르짖어 한동안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 "신사회론자"들은 산업사회의 연장선상에서 미래를 내다보지 않고 고대 중세 근대와 맞먹는 또하나의 커다란 역사발전단계를 예상하고 있다. 대형화 대량화 고속화를 선호하던 소비자의 니즈(Needs)는 이제 경박단소 다양화 예술화로 이행하고 있으며 이에 맞추어 상품의 가치는 대부분 인간의 창의력이 차지하게 되었다. 만드는 기술보다 모양내는 기술, 간편하면서도 초월적 성능을 갖는 설계효용보다는 재미를 보태주는 제품은 인간두뇌의 대량투입을요하는 것들이다. 재래식 전화기와 PCS,구식 단말기와 신식 PC를 비교할때 우리는 그 차별성에 놀라지 않을수 없다. 경제활동이나 기술개발의 중심은 이제 대량소비 대량생산에 머무르지않는다. 축적된 정보와 소도구를 활용하여 개인 또는 소수의 집단이 창안해 내는 패션, 집적회로, 누구나 손쉽게 가동할수 있는 자동화장치, 다단계 연산끝에 도달하는 각종 투자분석과 위험회피, 일목요연한 회계검증과 법률해석등 소위 소프트산업이 무대전면에 등장한다. 인류역사의 시발점에서 보면 역사는 순환하는 듯이 보인다. 원시사회에서는 각자가 소도구를 개발하여 농업이나 수렵에 종사한다. 노예제 생산에서는 토지와 노예가 분리된다. 가내공업에서 생산수단과 노동은 통합되었다가 공장제생산에서 거대자본과 대량노동으로 떨어져 나간다. 앞으로 전개되는 신사회에서는 소자본과 소노동이 다시 어우러질 것이다. 레스터 더로우가 추천한 라비 바트라의 사회순화법칙은 또다른 흥미를 끈다. 야망을 가진 인간은 대개 3가지형태의 인생을 설계한다. 완력(전사), 지성(종교 철학자), 재산(기업인)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차례로 세상을 지배한다는 것이다. 인생살이에 별다른 재미를 못느끼고 그저 되는대로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들 육체 노동자는 이따름 반란에 동원되는 경우가 있을 뿐 지배자는 못된다. 우리가 맞이하는 신사회는 지혜와 지식이 지배하는 사회이다. 완력의 시대가 가고 재력의 시대도 끝을 보이고 있다. 선진 강대국의 시대가 가고 대단위 생산시설이 동아리기업(job shop)에 종속하거나 부종한다. 머리만 잘 굴리면 얼마든지 지배자가 될수 있다. 이제 머리좋은 후진국은 없다. 우리는 그런 세상에 들어선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새로운 혁명은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다. 씰리콘 밸리에서는 일본기업들이 단독으로 또는 집단으로 창구를 내고 침을 흘리며 일거리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일본이 내는 로열티도 만만치 않게 늘고 있다. 그들의 관료주의 단체교육 특허금융으로는 극복하기 어려운 변화이다. 미국이 과감하게 이민을 받아들이며 그러고도 많은 공산품을 남미와 동남아로 이전생산하는데 반해 일본은 아직도 폐쇄적이며 많은 제조업을 그대로 않고 있다. 한국이 만들기에 안성맞춤인 것까지도 악착같이 붙들고 있다. 지가혁명의 경고음이 울린지 10년이 넘었어도 일본은 아직도 일본적인 것을 고집하고 있는 것이다. 싼 임금으로 만들 수 있는 제품을 중국이나 동남아로 내보내면서 비싼 임금은 계속 일본이 먹는다면 우리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우리는 제조기술을 뽐내는 일본을 넘어서 미국으로 가야 한다. 일본의 찌꺼기를 먹고 산다는 것은 자존심의 문제이기도 하다. 최근 우리나라가 일본에 앞서 통신기술을 동남아에 수출하게 된 것은 그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일본이 전통에 얽매어 미적거릴 동안 우리는 달려나가야 한다. 그들보다 앞서 통신 유통 물류와 금융 법률 회계시장을 개방해야 한다. 거기서 우리는 보고 배울 것이며 우리의 저력을 발휘할 것이다. 두뇌라면 우리가 일본 미국을 능가못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일본을 훈수하고 중국을 놀래키던 조상들의 지혜가 발양할 날이 온 것이다. 문제는 별것도 아닌 일을 해가며 거드름을 피는 이나라 공직자들이다. 이들이 아랫목에 앉아 개평을 떼며 딴죽을 걸고 협잡을 일삼으면 그러고도 많은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도록 고등전술을 쓰면 이나라 수재들은 다 그리로 몰린다. 고시촌에 왜 수만명이 들끓겠는가. 요즈음 운동선수 연예인등 인기업종에 지원자가 많다. 피나는 노력으로 뭔가 보여주고 돈을 번다. 공직자들은 국민에게 무엇을 보여주는가. 국민들이 탄복할 그들의 솜씨는 과연 무엇인가. 기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솜씨란 만일 공개된다면 부끄러운 것들 뿐이다. 그중에도 많은 분야에서 뛰고 있는 똑똑한 인재들의 활동을 가로막거나 실망시키는 재주는 하루 빨리 버려야 한다. 정부가 관리형으로 바뀌어야 한다. 회사경영 방식으로 작은 정부를 지향해야 한다. 그러면 눈꼴 틀린 일이 많이 사라질것이다. 부수입에 관심을 갖는 관료도 민주우사들의 피를 팔아먹는 정치인도 사라질 것이다. 부당치부가 어려워지면 사치 방종 탕진이 힘들어질 것이다. 모든 국민은 소질에 따라 기량을 늘리는데 전념할 것이며 마침내 후강의 승리를 안을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