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25일자) 뿌리뽑아야할 담합입찰

부실공사는 한국경제의 매우 뿌리깊은 고질병이다. 지난 몇햇동안 성수대교나 삼풍백화점의 충격적인 붕괴사고를 겪은뒤 수많은 다짐과 각오가 이어졌건만 왜 이렇게 부실공사가 끊이지 않는가. 그것은 우리 사회에 만연돼 있는 구조적 부정부패가 바로 부실공사의 뿌리이기 때문이다. 부실공사는 결코 기술이 모자라거나 현장근로자의 무성의 또는 실수 때문이 아니다. 공사발주 단계에서부터 자격심사 입찰 설계 시공 감리 기술자문에 이르기까지 담합 뇌물 졸속 등 온갖 비리가 활개를 친 결과일 뿐이다. 이중 입찰담합은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당연시 될 정도로 일반화돼 있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고가 나고 얼마뒤 미국 유수의 경제지인 월스트리트 저널에 "Tea Housing"이라는 제목으로 한국경제의 병폐를 통렬하게 지적한 원고가 실렸다. 한국동란 직후 미군 군납공사를 놓고 다방에서 건설업자들끼리 모여 담합입찰하던 관행이 수십년이 지나 경제규모가 엄청나게 커진 지금도 여전하며 기본적으로 한국경제 운용구조는 30년전과 달라진 것이 없다는 내용이다. 최근 사직당국에 의해 이같은 부패구조의 일부가 적발됐다. 검찰은 지난 23일 7백여건의 관급공사를 설계 감리 입찰하는 과정에서 7백억원대의 사례금을 주고 받은 설계및 감리업체 26개사와 뇌물을 받은 공무원 19명을 적발해 일부를 구속하고, 고민수 제주시장 등 지자체장및 정부투자기관 간부들을 소환 조사했다. 건설업계에서 관급공사는 대부분 공사낙찰가가 예정가의 90% 이상으로 수익성이 좋으며 웬만하면 기본적으로 따놓고 들어가는 공사로 알려져 있다. 담합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업계는 담합을 부인하거나 일부 인정하더라도 공사단가가 워낙 싸기 때문에 채산성을 확보하기 위해 불가피한 일이라고 강변한다. 몇해 전에는 한술 더떠 신한국당에서 규제완화라는 이름아래 담합에 대한 형사처벌을 면제하자는 토론회까지 연적이 있다. 이 자리에서 검찰관계자는 증거부족에 따른 수사상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오랜 세월 공사입찰만 전담해와 눈짓 하나로 다 통하는 전문가들이 무슨 증거를 남기겠는가. 설사 적발되더라도 도마뱀 꼬리자르듯 "바지사장"만 희생시키면 그만이다. 해결방안은 내부고발자보호법을 제정하는 수밖에 없다. 수주경쟁을 하다보면 내부정보가 새나가게 마련이지만 아무런 보상이 없다면 고발한 업체만 따돌림 당해 고사당하기 쉽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운 나쁘게" 적발된 몇몇 공무원만 구속시키고 끝낸다면 담합입찰로 인한 부실공사와 부패고리는 뿌리뽑을 수 없다. 오늘도 경부고속철도공사를 비롯한 크고 작은 부실공사 시비가 끊이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고질병일수록 뿌리를 뽑지 않고 겉으로 드러난 증상만 치료하면 병세는 더욱 심해지게 마련이다. 그 결과 우리경제가 오늘날과 같은 총체적 위기를 맞고 있다고 하면 지나친 표현일까.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