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25일자) 유훈통치 마감후의 북한

21세기를 눈앞에 둔 지구촌에 이런 나라도 있나, 의아심을 자아내는 북한의 여러 행태 가운데 유례없는 유훈통치 하나만은 잘하면 몇주안에 마감될 것같아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평남 도당이 앞장선 김정일 당총서기 추대결의가 내달 10일의 노동당 창당일 취임을 예정한 준비절차라는 관측이 대체로 일치하고 있다. 이를 다행으로 여기는 이유는 간단하다. 3년이 넘도록 나라의 원수직이 비어 있어,하다 못해 외국에 보내는 대사 신임장을 망자의 이름으로 써보내 상대국 정부를 당황케 했으니,이런 비상식적 행동을 밥먹듯 하는 집단을 상대로 대화나 거래를 한다는 것은 예측 불허이고 불안한 때문이다. 하긴 94년 7월 김일성 사망이후 오직 당 군사위 위원장 직함 하나로 김정일이 국정을 실질적으로 장악해 온 이상, 그가 당총서기에 정식 취임한다고 해서 북한체제가 근본적으로 달라지리란 기대는 걸기 힘들다. 왜냐 하면 식량난등 최악의 어려움이 겹친 상황에서 그로서는 있는 역량을 짜내느라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을 터이니 정식 취임으로 신통력이 생길 리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 상황에선 좀 다를 수도 있다고 본다. 무엇보다 한 조직체에서 중요직,그것도 최고직이 대행 서리 등 과도체제일 때와 그 기간을 극복했을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이 세상사인것이다. 우리는 북한이 지도자의 공석을 절차대로 메우고 그것을 계기로 그동안 평양발 뉴스라면 눈살을 찡그려온 세계인들이 이번엔 사람이란 저렇게 변할수도 있구나, 감탄케 하는 방향으로 심기일전해주길 바란다. 그러려면 어떤 방향으로 변해야 하는가. 첫째 개방이다. 개방하면 체제가 전복되리란 공포도 이해는 되지만 길게 보아 그 부작용이너무나 크다. 문을 계속 닫고 있으면 시대변화를 호흡할수 없어서 북한 혼자 뒤처져 세상에 구경거리, 비웃음거리가 되는 더 큰 역사적 과오를 범한다. 폐쇄속에선 어린애도 웃을 비상식, 시대착오적 언동을 부지불식간에 계속하게 된다. 김일성 생년을 원년으로 한 연호를 사용하는 발상이야 말로 그 적례다. 황장엽씨의 기고가 아니더라도 그것은 논평가치 조차 전무한, 득이라곤 눈곱만치도 없는 망발로서 지구촌 일원으로서의 자격을 스스로 박차는 어리석은 선택임을 알아야 한다. 둘째 호전성의 포기다. 나름으로 국가이니 국방체계야 갖춰야겠지만 그렇게 사사건건 살기등등한 싸움패 노릇을 자청하면서 어찌 식량원조에 합작투자를 외국에 바라는가. 50년에 걸친 자력갱생 실험이 실패,경제개발에 교역개방이 불가피함을 알았다면 호전성은 빨리 버릴수록 좋다. 셋째 후계체제의 반성이다. 공산주의를 표방하며 부자세습도 모자라 군주식 연호마저 쓰는 과오가 독재 탄압 폐쇄 위축 자멸로 이어지는 철칙을 외면하지 말고 이제부터라도 통치제제에 최소한 집단 지도제적 요소를 가미해야 더큰 실수를 막는다. 김정일은 어차피 역사에 책임을 져야할 위치에 서있음을 우리는 진심에서 충고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25일자).